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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시간

출판저널 편집부 2024-01-24 12:38:40 조회수 271

어떤 편집자의 시간, ‘평생 편집자’ 김이구의 편집노트

김이구는 80년대 중반 출판사(창비)에 입사한 이래 30여 년 동안 숱한 저명 작가와 저자들의 책을 편집한 정통 편집자다. 오랜 편집자 경험을 바탕으로, 그가 생각하는 편집의 의미와 가치, 편집자의 철학을 풀어가고자 했던 전작 집필기획이 갑작스러운 타계(심장마비)로 중단되었던바, 이 책은 그 집필 원고 일부에 지난 편집 관련 글들 중 주요한 몇 편을 더해 ‘평생 편집자’ 김이구의 일면을 담아낸 뒤늦은 결실이다. 그는 작가(저자)들 사이에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어려운 과정을 함께한 든든한 조력자이자 신실한 편집자로 기려진다. 더는 편집자가 작가와 책 뒤에 숨은 ‘그늘의 존재’가 아닌, 독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기도 하는 오늘, 지극히 소박한 어조이나 오랜 경험과 통찰이 밴 담백한 글들은 편집의 기본과 편집자의 덕목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한 편집자의 보이지 않는 긴 시간, 그 축적이 묵직한 존재감으로, 그리고 값진 ‘세대 경험’으로도 전해오는 것이다. ‘편집자라는 존재’에 대한 허심한 자기 정리와 더불어 활판 인쇄 시절 예화 등 지난 시간의 편집 풍경과 우리말(바로 쓰기)에 대한 자상한 일깨움 등도 시간의 간극을 넘는 귀한 읽을거리다.



‘느린’ 편집자의 지극함


탁월한 우리시대의 창조적 지성과 창조적 재능들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그분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을 큰 복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보석 같은 글과 마음이 독자에게 좀 더 정확하고 편안하게 전달되는 데 일조했다면 그것으로 저는 소임을 다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_2007 한국출판인회의 올해의 출판인상 수상 소감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 특히 꼽히는 아동문학평론가인 김이구이지만 그를 수식하는 주된 말은 ‘평생 편집자’이다. 실제로 1984년 창비 편집부에 들어간 후 2017년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기까지 30여년을 출판 현장을 벗어난 적이 없다. 이른바 ‘문인 편집자’이자 ’전문 편집자‘의 면모를 갖춘 정통 편집자로 굵직한 족적을 남긴 그이지만 일찍이 ‘올해의 출판인상’ 수상 소감에서, 그리고 이 책 곳곳에서 보여지는 것은 ‘겸손함’이다. 이는 단지 겸양의 미덕이 아니라 작가에 대한 존중과 글을 대하는 지극함이라 하겠다. 누구보다 창작의 고통을 아는 바고 원고를 귀히 여기는 만큼 단어 하나 문장 한 줄도 허투루 대할 수 없었을 터이고, 이를 편집자의 기본자세로 삼았음이다. 지엽적인 것으로, 간과되기 쉬운 것들에까지 미치는 그의 세심함은 때로 ‘느림’으로 폄하되기도 하지만 결국 작품의, 책의 완성도를 높이고, 중요한 문제제기를 낳기도 한다.(일례로 ‘교과서 대화 편집방식’ 등)
어디서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성품도 그를 기리는 많은 이들이 뽑는 덕목이다. 이 책 ‘서문’에서 최원식 교수가 애통해하듯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은” “타고난 군자”였음인가. 이런 성품은 “편집자는 많은 경우 그림자처럼 존재합니다. 작가 뒤에 숨은 그림자처럼 두드러지지 않은 방식으로 활동하면서 실제로 문학생산의 질을 좌우하고 소비·독서 패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위력적인 존재가 바로 편집자입니다.”(〈매개 지식인으로서 편집자의 즐거움과 괴로움〉(《우리 소설의 세상 읽기》) 중에서)라는 자신의 언급처럼 편집자의 자세로 자연스럽게 체화된다.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편집의, 편집자의 본령을 강조하고 그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함은 물론이다. 실제로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을 체험한 세대로 출판환경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꾸준히 자신의 역할을 찾아갔음은 다양한 형식의 책 기획과 책 너머 활동으로 드러난다.

한 편집자의 시간, 그 존재감
그의 오랜 편집자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가는 “편집의 원리, 의미와 가치, 그리고 편집자의 삶의 철학”을 담고자 했던 전작 집필기획이 갑작스러운 타계(심장마비)로 중단되었던바, 이 책은 그 집필 원고 일부에 지난 편집 관련 글들 중 주요한 몇 편을 더해 ‘평생 편집자’ 김이구의 일면이나마 담아보고자 한 뒤늦은 시도다. 미완의 안타까움이 크지만 그가 쌓아온 시간과 그 존재감은 묵직한 무게로 계속 남을 듯하다.

1.편집자라는 존재
“편집자란 모순된 자리에 서서 ‘다룰 수 없는 것을 다루는’ 존재”이다. 저자가 초보 편집자로서 전문 영역의 원고를 만져야 했던 당혹감의 일성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말이다. 독자에게 전달되는 글의 상태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편집자의 손인바 그 권한과 책임을 피할 수 없으며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겸손함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계간지 담당 편집자로 신인 작가 등단, 발굴에 기여한 자부심(권력)에서 사소한 교정 실수가 빚는 엄청난 결과까지(“편집자는 말을 있게도 하고 없애기도 하니 이 얼마나 무서운 권력인가.”) 소소한 예화들까지 곁들여 생생함을 더한다.

2.편집의 시간-지난 시절 편집 풍경
저자가 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한 1980년대는 활판 인쇄로 책을 만들던 때다. 당시 편집자들은 “자신들을 ‘교정쟁이’라고 자조적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교정지에 코를 박고 빨간 볼펜으로 교정을 보는 데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빨간 볼펜을 무기 삼아 ‘돼지꼬리 둘’(삭제) ‘돼지꼬리 하나’(글자 바로 세우기) 교정부호를 그리던 정경, 일일이 손으로 이뤄지는 문선, 조판 과정 등 저자가 전하는 작업 풍경은 아련한 느낌이다. 21세기 편집자들에게는 생소한, 흥미로운 내용이다. ‘책의 또 다른 표정’으로 전하는 지난 시절의 판권(간기) 스케치도 사뭇 흥미롭다.

3.편집자의 눈
실제 교과서 개발에 관여한 실무 경험과 감식안으로 국어교과서 전 종을 검토한 글들은 지난 교과과정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근본적인 문제제기로서 여전히 가치를 지닌다. 특히 교과서 대화문 편집방식에 대한 세심한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저자의 아동청소년문학에 대한 관심과 기여도는 공인된 바다. 상업적 성과를 거둔 ‘소설’에 편중된 청소년문학(상)에 대한 문제제기도 경청할 만하다.

4.우리말 클리닉
저자의 우리말에 대한 식견은 익히 알려진 바다. 편집자에게는 물론 글쓰기의 기본 요건으로 저자, 독자에게 모두 긴요한 내용이다. ‘클리닉’이라는 제목을 고수하며 실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잘못된 용례와 여러 예화를 끌어와 내리는 자상한 진단과 처방이 친근감을 더해준다.

도서 정보  :  김이구 지음  |  나의 시간  |  264쪽  |  값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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