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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서 현대까지 철학적 답변의 역사 <테크놀로지>

출판저널 편집부 2024-01-24 12:35:27 조회수 286

테크놀로지에 대한 사유가 부재한 한국 사회에서 ‘기술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제기한다. 불확실성의 시대, 테크놀로지가 인류의 희망과 절망의 교차점이 되고 있는 시대에 역사와 문화의 지평에서 테크놀로지를 이해하는 ‘문화적 접근법’을 통해 서구 역사에서의 철학적 사유와 기술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현대 테크놀로지의 근본 특성을 밝히고, 우리 시대 문명의 위기를 성찰한다.

에른스트 카시러와 루이스 멈퍼드의 철학에 기초한 문화적 접근법은 기술을 정신의 일부이자 문화의 구성 요소로 이해하며 인간을 문화적 동물, 즉 상징적 동물로 규정한다.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기술은 단지 응용과학이나 물질적 실천이 아니라 의미체계이며, 기술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문화 속에서만 가능하고 기술에 대한 물음은 근원적으로 인간에 대한 물음과 다르지 않다.




기술이란 무엇인가?


우리 시대의 근본 질문에 대한 철학적 답변
우리에게 테크놀로지에 대한 사유가 존재했는가?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디지털 강국의 위용을 자랑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과학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성찰과 반성적 사유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술적 몽유병’(랭던 위너)과도 같은 사유의 부재가,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 테크놀로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근본 원인일 것이다.
챗GPT 열풍에서 보듯 테크놀로지는 우리의 일상과 세계를 뒤흔든다. 혁신과 기대의 편에 서든 위험과 공포의 눈으로 보든, 오늘날 테크놀로지는 “인류의 불가피한 운명이자 미래”다. 자본과 권력이 결합한 빅테크 공룡기업과 NBIC 테크놀로지 융합이 이 흐름을 추동하고, 포스트휴먼/트랜스휴먼 담론이 부유하며 불확실성이 점증하는 가운데 기술을 오직 테크놀로지라는 유형으로만 바라보는 왜곡된 관념이 확산되고 있다. 지금 추세가 지속된다면 점점 더 고도화되고 자율성과 독자성이 증가하는 테크놀로지의 기세 앞에서 인간의 정신적, 윤리적 삶의 가치는 밀려나고 대다수 인간은 광대한 사이버 연결망의 접속점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역사적이고 거시적인 사유가 필요한 이유다.

문화와 역사의 지평에서 테크놀로지의 본질을 사유하다
이 책은 에른스트 카시러의 문화철학과 루이스 멈퍼드의 기술철학에 기초한 ‘문화적 접근법’을 통해 테크놀로지의 기원, 역사, 철학을 살펴봄으로써 ‘기술은 무엇인가’라는 우리 시대의 근본 질문을 탐색한다. 문화적 접근법은 기술을 정신의 일부이자 문화의 구성 요소로 이해하며 인간을 문화적, 상징적 동물로 규정한다.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기술은 단지 응용과학이나 물질적 실천이 아니라 의미체계이며, 총체성·역사성·관계성이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핵심이다. 그리고 기술에 대한 물음은 근원적으로 인간에 대한 물음과 다르지 않다.
문화적 접근법의 근본 조건은 상징의 보편성, 기술의 기원으로서의 신화와 우주론, 기술의 진화, 기술 이해의 다양성이다. 저자는 이런 조건을 바탕으로 서양의 철학적 사유와 기술이 맺어온 역사를 살펴본다. 즉 고대 그리스의 테크네technē, 중세의 아르스ars, 근대의 테크닉techinc, 현대의 테크놀로지technology라는 네 가지 기술 이해 방식을 제시한다. 시대에 따른 의미 변동에서 다양한 기술의 공존 가능성과 기술 이해의 다수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역사와 문화의 지평에서 테크놀로지를 이해하는 ‘문화적 접근법’을 통해 테크놀로지의 근본 특성과 현대 문명이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러한 모색 위에서 우리는 기술결정론에 입각해 테크놀로지의 문제를 기술적 측면에서만 다루고 테크놀로지가 초래한 문제를 더 많은 테크놀로지로 해결하려는 시각에서 벗어나 미래의 방향을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 앞에는 근본적인 불확실성 속에서 새로운 질서와 동적 균형을 창출해야 하는 긴급한 과제가 놓여 있다. 이는 과거의 기계문명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됐던 인간, 생명, 생태, 공존의 가치를 문화라는 전체 틀에서 재구성하고 테크놀로지를 이 관계망의 일부로 다시 포섭하는 일이 될 것이다.”

상징체계와 문화: 카시러와 멈퍼드
카시러와 멈퍼드의 사유의 바탕에는 인간이 만든 모든 문화적 구성 요소는 상징체계이고, 인간이란 자신이 만든 문화적 활동을 벗어나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통찰이 깔려 있다. 멈퍼드에게 테크닉과 예술은 인간 본성의 두 가지 성향이다. 외부 환경을 통제하는 객관적 활동인 테크닉과 인간의 내적 필요를 표현하는 활동인 예술은 늘 함께 작용하며, 상징이 이를 매개한다. 멈퍼드는 이 통합이 깨져 테크닉과 예술이 극단적으로 분리되고 정치권력, 기계적 관념, 권위적 기술이 강하게 결속된 상태를 ‘거대기계-거대기술’의 조합으로 표현했다. 멈퍼드가 보기에 현대의 위기의 근원은 인간 본성의 분리, 즉 테크닉과 예술의 분리이며, 이 둘의 조화와 균형에 위기 극복의 길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멈퍼드는 기계 중심의 기계적 세계관에서 인간과 생명 중심의 유기체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역설했다.
카시러 문화철학의 근본 원리는 인간의 자기 인식 문제와 생성의 원리다. 카시러에 따르면, 인간이란 정신의 근본 기능을 통해 형성된 문화 세계의 영역, 곧 언어·신화·종교·예술·과학 등의 상징체계들에서만 인간적인 삶을 유지하고 제대로 이해될 수 있는 존재다. 또 카시러는 존재와 생성의 이원적 대립 관계를 진정한 상관관계로 통일하려 했으며, 인식의 범위를 문화 전체로 확장했다.
문화철학은 상징형식의 체계들의 체계다. 상징형식은 실재라는 근원 현상으로부터 다양한 갈래로 뻗어 나오는 정신의 능동적 힘이자 형태화 작용이다. 카시러는 기술을 또 다른 상징형식의 체계로 규정한다. 그는 기술의 우위를 인정하면서도 기술의 근본 형식과 가능성으로 기술을 체계적으로 문화에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기술을 하나의 상징형식의 체계로 다른 상징형식의 체계들과 병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형성 조건과 가능성을 파악함으로써 문화 세계에 유기적으로 통합시키는 것이다.

고대 세계의 테크네와 아르스
고대 그리스인들은 우주를 아름답고 질서 정연한 코스모스로 규정하면서 우주, 폴리스, 인간을 통합된 전체로 이해했다. 당시에 ‘테크네’는 폴리스의 유대를 강화하고 시민들의 도덕적 합일을 이끌어내는 사회적 기능을 했다.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구별한 그리스인들은 신적 만듦을 뜻하는 ‘피시스’와 인간적 만듦을 뜻하는 테크네를 구별했다. 이런 우주론과 사유 구조에서 테크네는 자연의 질서를 모방해 주어진 것을 활용함으로써 좋은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인간의 지적 활동이자 능력이었다.
헬레니즘-로마 시대는 테크네에서 아르스로의 이행기였다. 이때 근대적 의미의 테크닉과 예술의 통합 개념, 즉 기예技藝가 탄생하는데, 두 가지 핵심적인 변화가 이를 이끌었다. 하나는 스토아철학의 ‘인간의 근본적 평등’이라는 관념이 로마시대에 인간성의 이상으로 정립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로마의 지식인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설을 바탕으로 이데아를 장인/예술가의 정신에 있는 내적 형상으로 파악함으로써 플라톤의 초월론적 미의 관점에 근본적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아르스
고대의 테크네를 계승한 중세의 아르스는 순수예술과 수공예 및 학문을 포괄하는 모든 지적 형식의 통합 개념이었다. 근대와 달리 중세에는 순수예술과 공예를 나누지 않았으며, 아르스의 실천에서 정신적 노고만 필요한지 신체적 노고도 필요한지에 따라 아르스를 ‘교양 아르스’와 ‘기계적 아르스’로 구분했다.
중세의 근본정신은 기독교와 신비주의의 결합으로 형성된 상징주의다. 모든 피조물을 하느님이 창조한 기호나 상징으로 본 중세인들은 종교적 감정을 강렬한 이미지로 전환한 징표를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숭배했으며 이에 걸맞은 상징적 이미지를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중세의 사유 구조에서 아르스의 의미는 고대 테크네처럼 자연의 질서를 모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활동에 머물지 않고 하느님이 창조한 수많은 기호/상징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초월적 세계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의식적 활동이었다. 아르스의 본질적 의미는 스콜라철학과 고딕건축의 동시 발생이라는 사건, 그리고 중세의 초월적 미학에서 잘 드러난다.

근대의 테크닉
근대의 ‘테크닉’은 다의적인 개념이었다. 17세기 이탈리아의 신조어 테크니카technica가 프랑스의 테크니크technique로, 18세기 독일에서는 테히니크Technik로 번역 소개되면서 전 유럽으로 확산된 결과 19세기 중반 테크닉은 세 가지 의미로 쓰였다. 첫째 무엇을 제작하거나 실천할 수 있는 인간의 지적 활동, 둘째 산업과 엔지니어링 영역에서의 물질적·실천적 측면, 셋째 응용과학이다. 그리고 19세기 후반에 베버는 ‘합리적 행위에 수반되는 수단의 총체’라는 정의를 추가했다.
테크닉의 의미는 근대의 기계적 세계관의 확립 과정 및 아르스가 순수예술과 공예로 분리되는 과정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 순수예술과 공예의 분리는 오래된 기술과 예술의 통합의 균열을 의미했다. 규칙과 질서라는 속성을 테크닉에 내어준 예술은 추상적이고 분열적인 방향으로 나아간 반면 상상력과 직관을 순수예술에 내어준 테크닉은 모든 것을 계산 가능성과 효율성에 종속시키는 물화 체계 강화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런 상황에서 공장과 기계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산업과 엔지니어링의 물질적, 실천적 측면이라는 테크닉의 의미가 점점 강화되었다. 그 결과 19세기에는 테크닉-엔지니어링-과학이 하나로 통합되는 상호 네트워크와 협력이 가속화되면서 기계문명이 본격화되었다.

기계문명의 비판자들: 하이데거와 멈퍼드
하이데거와 멈퍼드는 테크닉의 본질을 간파하고 기계문명을 고찰한 1세대 기술철학자들이다. 하이데거는 ‘몰아세움’ 개념으로, 멈퍼드는 ‘거대기계-거대기술’ 개념으로 기계문명의 작동 원리를 비판하고, 이 원리가 극단적으로 진화한 현대 테크놀로지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하이데거는 근대의 테크닉을 지배하는 탈은폐의 방식을 ‘도발적 요청’이라는 의미의 몰아세움으로 규정한다.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근원적으로 변형시킨 몰아세움은 모든 존재자가 언제든지 교체 가능한 ‘부품’의 방식으로 계산되고 배치되도록 탈은폐된 사태를 의미한다. 여기서 모든 것은 에너지를 뽑아내고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부품으로 배치되는데, 결국 인간을 비롯한 자연 전체가 황폐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멈퍼드의 거대기계 개념은 인간뿐만 아니라 사회조차 그 부속품이 되어버린 거대한 기계 체계를 의미한다. 여러 부품이 조합되면서 사회 자체가 거대기계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인간은 기계를 부리는 주체가 아니라 기계 체계를 위한 종속과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문명 전체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기계처럼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권력, 규모, 속도, 위계적 집중화 등의 속성을 띠는 거대기계는 거대기술과 맞물려 권력이 상정한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사회 전체를 일사불란하고 체계적인 거대 동원 체계로 만들어 작동시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를 의미한다.

현대의 테크놀로지
20세기 이후 양자역학, 비평형열역학, 사이버네틱스를 포함한 체계이론의 등장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 속에서 현대 테크놀로지 개념이 정립된다. 기원은 19세기 말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제2차 산업혁명의 흐름이다. 미국 학자들은 기계라는 대중적 용어나 여러 의미가 중첩된 테크닉이 아닌 테크놀로지를 선택함으로써 의미상의 공백을 메웠다. 이에 따라 1930년대 테크놀로지는 산업적·공학적 실재와 물리적 실천을 의미하는 가장 일반적인 용어로 쓰였으며, 1940년대 원자폭탄 프로젝트가 성공하면서 테크놀로지를 응용과학으로 보는 입장이 두드러졌다. 이런 과정을 통해 테크놀로지는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 확장과 함께 보편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응용과학으로서의 테크놀로지 개념은 현대 테크놀로지의 본질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부적절하다. 현대 테크놀로지는 19세기에 서구 유럽을 지배했던 물화 체계로서의 테크닉의 연장선을 넘어 독자성과 자율성이 폭발적으로 증대되는 특성을 보인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독자성과 자율성의 증대가 새로운 이론적 배경과 디지털 환경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세기를 전환점으로 학문적 패러다임은 근대의 기계적, 결정론적 세계관에서 현대의 복잡성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었다. 계산 가능성, 선형성, 결정성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성, 비선형성, 비결정성의 세계로 진입한 것이다.

체계이론의 철학자들: 엘륄과 시몽동
체계이론을 수용해 기술철학을 전개한 자크 엘륄과 질베르 시몽동은 21세기를 대표하는 기술철학자들이다. 우연성과 작동에서부터 의미의 산출을 전제하는 체계이론을 수용한 사상가들은 의미 문제를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는 난점이 있다. 엘륄은 체계이론의 자장에서 환경 자체를 테크놀로지로 간주함으로써 모든 것을 테크놀로지로 환원하는 닫힌 체계를 제시한다. 엘륄에 따르면, 자율적 기술체계로 성장 전화한 테크놀로지가 현대의 새로운 신으로 등극했으며, 이 체계에 동화된 인간은 여기서 빠져나올 수 없다. 이런 아포리아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피난처로 엘륄은 종교에의 귀의를 권유한다.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이론은 2차 대전 당시 대공포 시스템 구축을 위한 다학제 연구로 시작되어 로봇공학, 인지과학, 철학, 심리학, 조직이론, 경제학, 컴퓨터과학 등의 다양한 학문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사이버네틱스 이론의 공통점은 인간과 사물을 유사하게 이해한다는 것이다. 체계-환경 간 제어와 피드백 메커니즘의 작동이라는 원리에서 인간, 동물, 기계, 사회조직은 차이가 없다. 위너는 기계와 생명체와 사회에 모두 사이버네틱스 원리를 적용했는데, 시몽동은 위너의 체계이론을 생명체와 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비판한다. 그는 개체화 이론의 차원에서 정보와 형태의 구분, 의미와 의미작용의 구분, 변환역학을 통해 다양한 의미의 발생을 설명한다. 그러나 시몽동의 논의는 너무 많은 요소를 변환 작동에 포함시킴으로써 오히려 의미의 산출을 모호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의미 발생의 문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문화에서 배제된 테크놀로지의 존재론적 지위를 복원함으로써 테크놀로지를 다시 문화 세계에 통합하려 했던 시몽동의 철학적 기획도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도서 정보  :  문종만 지음  |  마농지  |  640쪽  |  값 3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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