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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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퀼트하는 여자

출판저널 편집 2023-03-20 15:00:03 조회수 489

맺고 흩어지는 인연 속에서

사랑과 길을 찾아가는 화자의 삶의 모색이자

생과 사람, 자연에 건네는 위로가

꽃으로 피어나길 바라는 그리움의 시집




시가 너무 어려워지는 때에 쉬우면서도 낡지 않고, 대중성이 있으면서도 새로운 참신한 소재와 진정성 있는 주제가 리듬을 타고 흐른다. 꽃은 언제나 많은 시의 소재가 되지만, 이 시집에 나타난 꽃의 시상은 오랜 세월 직접 꽃을 보고 찾아다닌 생생한 현장성이 있고, 사라져 가는 귀한 꽃들이 전달하는 의미를 메시지가 아닌 소통의 방식으로 표현된다. 단지 꽃의 생김새나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꽃과 화자가 일체화되어 타자와의 관계를 형성한다든지, 꽃 자체의 존재만으로도 사랑의 완성을 보여주는 등 다른 꽃 시와는 차별화된 화자의 세계관이 이 시집에선 그려지고 소통이 된다.


그런 날 있었나

생이 비구름에도 젖지 않고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아

 그림자까지 환하게 눈부신 날”(새우란, 13). 


꽃을 보는 마음은 모두 비슷하리라. 그래서 우리는 꽃길만 걸으라는 덕담을 한다. 그러나 자연에서 만나는 꽃은 인간의 삶보다 더 처연하고 절망적일 때가 많다. 그 고난 속에서도 꽃은 가장 예쁜 얼굴로 피어난다. 좌절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때때로 비구름에도 젖지 않고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날이 있어 그 힘으로 하루를 견디고 내일을 살아가길 소망한다. 피고 지는 꽃처럼.


이 시집은 총 5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꽃이라는 소재를 통해 사랑과 사람을 노래한다. 오랜 시간 카메라를 들고 전국의 깊은 산과 섬을 다니며, 사라져 가는 귀한 꽃들을 만났고, 흔하고 생명력이 강한 풀꽃도 만난다. 야생에서의 꽃은 혹한과 혹서, 비바람과 태풍을 맨몸으로 이겨내며 때로는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곳, 때로는 물 한 방울이 없는 곳에서도 피어나는 강인함과 처연한 삶을 보여준다. “설령 꽃 피우는 일이 목숨을 놓는 일이라 해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꽃이기에”(<광릉요강꽃>, 24). 그러나 그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꽃은 피어나듯 1부의 시는 절망보다는 사랑과 환희, 그리움과 희망을 노래한다.

2부의 시는 마음의 정처를 따라간다. 마음은 나의 것이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마음과 내일의 마음이 같지 않고, 현실의 마음과 이상의 마음이 다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마음을 바라보며 모나고 상처 많은 그 모든 마음조차도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시로 표현되었다. “비 내리는 나무 아래서/ 비를 맞고 있어야 하는지/ 비를 벗어나 빗속으로 가야 하는지”(<마음 공부>, 44),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도 생이 또 이렇게 뜨겁군요”(49). 또 배울 점이 있는 이웃의 소박한 모습까지 이미지로 나타내고 표현한 시들이 2부의 시를 이룬다.

3부의 시는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고 있다. 사랑이란 인간의 생존 본능이기도 하지만 죽는 날까지 가장 큰 환희와 동시에 가장 큰 고통을 안겨주는 번뇌의 핵심이다. 그래서 수많은 시가 사랑을 노래하고 모든 예술이 사랑을 시발점으로 하고 있다. “반년을 굶을 수도 있을 것인가 과연 사랑이”(<공룡 능선>, 66). 이 안에는 추억도 있을 것이고 현재 진행형의 사랑도 존재할 것이며, 그리움이 된 사랑과 이별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훔치려 한 적 있습니다”(<신록의 집>, 68). 그 모든 것이 나를 통과해 갔고, 그 통과하던 시점의 고통 그리움 미련, 후회 등이 그대 없는 진공 속/ 슬픔이라도/ 눈물이라도/ 와 주길 곁에 있어 주길”(<이별 속>, 84) 진정성 있게 그려진 시편들이다.

4부는 시집 <인터뷰> 중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퀼트(바느질)를 통한 이 시대의 여성 차별적 모순과, 노동과 희생으로 자식을 키우신 어머니의 삶을 노래했다. 어머니의 삶과는 좀 다르지만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지은이의 모습이기도 하다. “실제로 퀼트(바느질)를 오랜 세월 하면서 저도 어깨 통증이나 손가락 부종 같은 지병이 생기기도 했지만, 생존을 위해 온갖 삯일을 한 어머니에 비할 바는 못 되지요.”(작가의 말) 그런 어머니 삶에 대한 헌사와 애통함, 그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부정이 시로 표현되었다. “내 몸을 찌른 무수한 상처를/ 치료해본 적 없어요”(<골무>, 96). 그러한 갖가지 연민이 딸의 모습까지 이어지는 이 시대를 사는 평범한 어머니와 딸의 모습이 처절하고 진정성 있게 그려진 시를 모았다. “딸아 모든 길이 네 머리 위에 있다/ / 넘어지지 않을 게다”(<인형>, 96).

5부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크고 작은 모순이나 시대상을 그려낸 시편들이다. 소외된 이웃들의 모습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