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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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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주하는 일

출판저널 편집부 2024-12-30 13:19:34 조회수 50

세계적 발레리나 김주원 첫 산문집

타인이 아닌‘나 자신을 이겨내는 힘’에 대하여


“좋아하는 것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내 꿈에 집중한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내 꿈은 변화하는 발레리나가 되는 것이고, 머물러 있지 않는 예술가가 되는 것이었다는 것을.”

‘이 사람 정말 오뚝이처럼 잘도 벌떡 일어나 다시 뚜벅뚜벅 걸어가는구나, 이 성격 나도 갖고 싶다. 진짜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자람(소리꾼)

발레리나 김주원은 그녀의 몸짓을 통해 자신을 마주하고, 삶을 마주하고, 세상을 마주했다. 이토록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할 수 있을까.
한예리(배우)

‘최선의 나로 사는 비밀’, 높은 도약 아래 숨겨진 발레 장인의 치열한 사생활을 감상해 보길!
김지수(『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저자,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기자)



‘최선의 나’로 사는 삶
5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무대 위의 발레리나’가 어울리는 사람. 15년간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로 활약하고 2006년에는 전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 발레의 위상을 전세계에 알렸던 발레계의 상징적 아이콘 김주원이 첫 산문집을 냈다. 어느 분야인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일이 쉽지 않은 것임은 분명하지만 발레야말로 대중적들의 관심과 가깝지 않은 지점에서 부상과 훈련을 통해 나 자신과의 싸움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분야이다.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거울 앞에 서서 못난 자기 자신과 마주해야 하고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을 이겨내는 힘’을 길러야 한다. 35년 그런 생활에 이제 익숙해진 김주원은 매번 선택의 기로에서 편안함에 이르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선택의 순간마다 자발적으로 ‘추방된 자’가 되어 가지 않은 길을 걸으며 새로운 길을 개척했고 그런 선택에 대한 후회나 미련이 없다.

나의 아주 오래된 이상한 습관 중 하나는, 내가 안전하거나 게을러진다고 판단
되면 내 몸을 다시 길을 찾아야 하는 새로운 미로로 내던지는 것이다. 나는 편안함이 불편하다. 안전해서 게을러지는 순간 고된 미로를 찾는다. 어쩔 수 없는 천성이다.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야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안도감이 든다. - 본문에서

차이를 받아들이고 나에게 집중하는 지혜
1990년대 초반, 선화예중 학생이던 김주원은 러시아 볼쇼이 발레학교로 유학을 가겠다고 가족들에게 통보를 한다. 우리에게 러시아보다 ‘소련’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던, 외부에 개방된지 1년도 되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에 가겠다는 딸의 요청을 부모님은 한사코 거절했지만 딸의 고집을 끝내 꺾지 못했다. 러시아 볼쇼이 발레학교의 유일한 한국인 학생으로 지내는 생활은 당연히 녹록치 않았다. 언어의 장벽 뿐 아니라 신체의 장벽까지 마주해야 했고 연습실에서도 맨 뒤, 집중받지 못한 자리에 서야 했다.

연습실에서 내 자리는 맨 뒤, 잘 보이지 않는 자리였다. 거울을 봐도 그들과 나의 체형이 완전히 달랐다. 아니, 모든 것이 달랐다. 그들은 큰 키에 작은 얼굴, 길고 가는 팔다리 라인까지 신체 조건이 완벽했다. 그동안 내게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고 단점을 커버할 수 있는 움직임과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움직임을 고민해 왔지만, 러시아 친구들과 함께 거울 앞에만 서면 답이 없어 보였다. 교실의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거울 앞에서 날마다 나의 부족함과 마주해야 했고,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본문에서

그런 상황에서도 김주원은 차이를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즐거웠다고 고백한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자신의 우상이던 발레 스타가 선생님이고, 자신의 스타들의 동작을 관찰하고 감상할 수 있는 수업 시간을 즐기며 임했다. 하루하루는 너무 힘들지만 매일매일 행복을 느꼈다. 고향인 부산 바닷가에서 어릴 때 매일 보던 눈부신 빛이 자신을 향해 내리쬐고 있다고, 자신은 꿈을 찾아 큰 바다로 온 고래라고 생각하며 꿈을 키웠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수업을 시작하기 한참 전인 7시에 연습실에 내려가 혼자 연습을 했다. 수업시간에는 최대한 집중해 선생님 말씀을 들었고,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도 연습실에서 홀로 연습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그렇게 2년 정도 보냈을 때 내 자리는 교실 중앙의 앞자리로 바뀌어 있었다. - 본문에서

세계적 발레리나의 치열한 사생활
발레리나는 매일 온몸을 비추는 거울 앞에 서서 부족한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일상을 보낸다. 온몸에 멍자국이 가득한 채로 종일 노력해도 거듭된 실패를 받아들여야 한다.
김주원은 자신의 인생에 실패의 기록이 훨씬 많다고 고백한다. 부족한 몸으로 원하는 라인을 만들기 위해 매일 실패했고, 실패의 크기가 줄어들 때면 새로운 희망을 품었다. 만족할 수 있는 동작과 표현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에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하루 종일 실패한 자신을 마주해야 한다.
성장이 노력이 반영된 상향 곡선을 그려주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폭이 넓은 계단처럼 한참을 그 자리에서 제자리걸음하듯 애쓰다 보면 어느 날 한 계단 올라 서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계단에 올라서기 전까지는 끝을 알 수 없는 평지가 이어지고, 그러니 ‘버티는 자가 이기는 것’이란 순리도 일찌감치 깨달았다. 막막함을 버티고 묵묵히 자기 자신과 싸워가며 천천히 계단식으로 성장하는 법을 알았던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하루 종일 나는 실패한 자신을 봐야만 한다. 그래서 나에게 발레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나 자신을 보기 위해 인내하고 연구하는 과정이었다. 다른 발레 무용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게 잦은 실패를 마주하며 훈련하다 보면 마음이 단단해진다. 결국 강한 멘털은 수많은 실패의 산물인 셈이다.” - 본문에서

이렇게 자신과의 싸움에 익숙한 일상을 보내며 위기가 닥쳐도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덤덤하게 수습하는 힘이 생겼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시련을 극복하며 내면이 단단해지고 자아가 강해지면서 성장하게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는 것.
무대 위 발레리나들의 치열한 삶, 그리고 무대 위의 짧은 순간을 위해 매일 정진하며 집중하는 일상의 태도를 통해 독자들은 어떤 숭고함마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의 재능으로
2012년, 프로 발레리나의 길을 걸어온 지 15년 되던 해에 김주원은 국립발레단을 퇴단했다. 갑작스러운 퇴단이었지만 충동적인 결정은 아니었다. “그 무렵 나는 고래가 되어 먼바다를 항해하는 꿈을 자주 꿨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무의식이 이런 꿈을 꾸게 했다. 누군가로부터 선택을 받는 삶이 아닌,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공연하고 싶은 작품을 찾고 함께 일하고 싶은 예술가들을 찾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이제는 발레리나로서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며 클래식 발레 전막 공연을 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자신의 춤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워질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나가야만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았고 이루기 힘든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이, 자신이 예술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임을 알았다.
그렇게 새로운 세상에서 예술감독으로도 역량을 발휘하여 〈김주원의 마그리트와 아르망〉, 〈탱고발레〉, 〈사군자-생의 계절〉, 〈레베랑스〉 등 다양한 창작 작업을 꾸준히 이어 나갔다. 또한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사람들을 소통하고 더 나아가 위로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갔고 사회복지단체와 함께 발레 교실을 열기도 했다. 체계적인 공부를 위해 사회복지학 학문을 공부했고 예술을 통해 꿈을 꿀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어 발레를 가르치고 함께 공연 무대를 만들기도 했다. 한때 눈부신 빛이 자신을 향해 내리쬐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김주원은 이제 누군가의 바다를 은빛으로 물들이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예술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재능이다. 인간의 감정을 감싸안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 누군가에게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은 근사하고 멋진 일일 것이다. - 본문에서

도서정보  :  김주원 지음  |  몽스북  |  168쪽  |  값 1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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