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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린 을의 정치학 <풍운의 정치인 김상현을 읽다>

출판저널 편집부 2024-12-30 13:16:47 조회수 52

풍운의 정치인 _ 김상현
김상현은 50여 년의 정치 이력을 갖고 있지만, 상당 기간을 박정희 군사정권과 전두환 독재정권 아래서 감옥에 갇히고 연금되는 등 강제로 정치 활동을 금지당한 정치인이었다. 필자들이 감히 이 책의 제목을 ‘풍운의 정치인, 김상현을 읽다’라 하고, 부제를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린 을(乙)의 정치학’이라 한 것은, 그러한 수식(修飾)이 그의 정치 인생을 포괄하는데 가장 가까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책을 쓰면서 필자들의 가슴을 가장 뜨겁게 달군 부분은 그의 삶 속에서 우러나오는 휴머니즘이었다. 요즘같이 정치가 극단적 대립과 증오, 독설과 편견으로 가득한 시대에 그의 정치적 삶은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생전에 김상현은 자신에게 혹독한 고문을 가한 사람에게조차 “나를 두드려 팬 놈들이 사람이 좋아서 이 정도지, 나쁜 놈들이었으면 뼈가 모두 부러졌지, 멍만 들었겠는가?” 하며 허허 웃었다고 한다.
또 “정치를 하다 보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패 죽일 놈들이 많은데, 내가 마음이 편해져야 적이 최소화되고, 그래야 나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고 내 편이 넓어져서 내가 정치를 잘할 수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이해하고 양해하고 용서하는 게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도 좋다”고 주장하며 이를 그대로 실천했다.

한계를 극복한 정치인 _ 김상현
김상현은 고매한 인품과 높은 지성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엄청난 카리스마를 내뿜는 지도자상(像)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는 자신을 ‘양아치’라고 스스럼없이 표현하기도 할 정도였는데, 노동부 장관을 지낸 남재희는 그를 일컬어 ‘잡놈성(性) 거물’이라고 했다. 그는 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장삼이사들과도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김상현은 화려하고 장엄한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었기에 ‘승자’로 추존되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의 업적과 활동은 기본적인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를 전적으로 ‘패자’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그의 삶과 생각, 정치적 업적은 ‘승자’에 비견할 수 없을 정도의 평가받을 만한 것들이 많다.
이 책은, 바로 높게 평가받아야 하는, 그러나 묻혀 버린 김상현의 정치적 업적과 활동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김상현이라는 정치인의 업적과 활동을 기록한 전기(傳記)이되, 이를 해석·평가하여 서술하는 평전(critical biography)의 성격을 갖는다.
이 평전의 집필 원칙은, 절대로 김상현을 분식하고 미화하는 ‘기념사업’ 차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곧 “사건을 기록하는 기사(記事), 직분을 바로잡는 정명(正名), 칭찬과 비난을 엄격히 하는 포폄(褒貶)의 원칙을 세워, 여기에 어긋나는 것은 철저히 배격하고 오직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자신의 판단에 따라 집필”해야 한다는 공자의 춘추필법(春秋筆法)을 따르자는 것이었다.

마당발 정치인 _ 김상현
그런 만큼 이 책은 김상현의 업적과 활동만이 아니라, 그의 일생을 관통하였던 심리적 콤플렉스, 윤리·도덕적 일탈, 인간적 한계, 정치적 전략과 전술의 오류도 가감 없이 드러내려 하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는 유족을 포함하여 그를 따르고 좋아했던 분들에게 다소 불편한 감정을 갖게 할 부분도 있다.
이 평전은 우리 정치사를 풍부하게 할 사료적 가치가 충분하게 들어 있다. 공식적인 기록과 연구를 통해 밝혀지지 않았던 한국 정치사의 전경이 이 평전의 군데군데서 드러난다. 특히 야당 정치의 풍경, 김대중·김영삼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모습들도 복원 소환한다. 1971년 신민당 전당대회 경선과 대통령선거의 풍경들, 1984년 전두환 독재정권 하에서의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과 2.12총선을 둘러싼 뒷얘기도 공개된다.
이 책은 이를 위해 주요 관련 생존 인물들의 인터뷰를 2년여에 걸쳐 수행하였다. 물론 그들의 증언을 곧이곧대로 수용하지는 않았고, 객관적 문헌 자료들과 여러 관련자의 증언을 교차 검증하여 신빙성과 타당성이 있는 소재들을 추려내 평전의 고갱이로 삼았다.
또한, 이 평전은 김상현의 정치적 삶에 얽힌 에피소드들도 많이 발굴하여 담았다. 이 일화들은 그의 휴머니즘이 듬뿍 묻어나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이다. 정치가 살벌하고 무미건조한 이익 계산의 공학으로 전락해 버린 오늘의 현실에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주리라 믿는다. 특히 정치를 알고 싶거나 정치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이 평전을 권한다. 김상현은 어린 꿈나무들에 대해서도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 최불암 등과 함께 한 천안 소년교도소 공연의 일화도 이 책에 소개되지만, 그가 청소년들에게 보인 애정은 남다른 것이었다.




후농 김상현(後農 金相賢, 1935.12.6.~2018.4.18.)

전라남도 장성군 출신으로 6선(제6, 7, 8, 14,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신문 배달과 껌팔이 등으로 동생들을 보살피며 야간학교를 졸업했다. 일찍이 정치를 꿈꾸어 웅변 연습 등에 매진하던 중 청년 김대중을 만나 평생의 동지가 되었다.
1965년, 서울 서대문갑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제6대 국회에 입성한 후, 김대중 의원의 핵심참모로 1970년 김대중을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만들었다. 비록 김대중이 간발의 차이로 박정희에게 패배했으나, 이후의 역사는 김대중을 세계적 인물, 민족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니, 이는 김상현의 기민한 전략과 직관이 큰 역할을 했다.
김대중과 김상현은 1972년 박정희의 ‘10월 유신’과 1980년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감옥에 가고, 국외로 망명하고, 장기간 자택에 연금되어 피선거권을 박탈당하는 등 두 사람 모두 오래도록 야인 생활을 해야 했다.
1983년, 김상현은 미국에 체류 중인 김대중을 대신하여 김영삼을 설득, 민주화추진협의회를 조직하고, 1984년 선명 야당 신민당을 창당하여 2.12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1987년 6월항쟁의 승리는 제도권 야당의 재야의 투쟁에 합류한 것이 결정적이었으니, 민추협 출범, 선명 야당 창당과 총선 승리, 6월 민주항쟁의 승리 모두 김상현의 직관에 크게 힘입었다.


각 장별 내용 요약

제1장 어린 시절
제2장 정치를 꿈꾸다
제3장 결혼 : 평생 동지를 만나다
13살 때 아버지 사망, 한국전쟁의 초기 장남인 형 행방불명, 이어 어머니마저 빨치산에게 밥을 해주었다는 이유로 군경에 총살되자 16살의 나이에 가장이 되어 신문팔이, 구두닦이 등으로 동생들을 보살피는 한편,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만나 웅변 연습을 하는 등 정치가의 꿈을 키웠다. 그즈음 그의 영원한 ‘형님’이자 멘토 김대중을 만났고, 집요한 노력 끝에 부잣집 고명딸과의 결혼에도 성공하였다.

제4장 국회 입성
제5장 당찬 초선의원
1965년 민중당 공천으로 서울 서대문갑구 보궐선거에 출마, 세간의 예측을 꺾고 29세 약관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국회에 입성하기 위해서 다양한 전략을 연구하고 폭넓은 인간관계를 구축했으나, 당선 후 자신의 한계와 능력 부족을 절감, 많은 전문가와 교유하여 배우고 스스로 연구 노력하였던바, 이는 50여 년 후 정계에서 은퇴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햇병아리 초선의원으로서 대통령 박정희에게 면담 신청을 하여,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피력해 항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6장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
제7장 3선 중진의원 : 더 넓은 정치의 바다로
박정희는 제7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위해 3선개헌을 감행했다. 야당인 신민당에서는 40대의 김영삼, 이철승이 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야당의 소수파 비주류인 데다가 계파 국회의원이 달랑 김상현 한 명뿐인 김대중은 출마는 언감생심 꿈조차 꾸지 못했다. 김상현은 주저하는 김대중을 설득하여 대선 출마를 선언하게 하고, 기기묘묘한 전략으로 김영삼을 꺾고 경선에서 승리했다. 김대중은 71년 대선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관권, 부정 불법 선거로 패배했지만, 이후 정치인을 넘어 민족의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제8장 유신선포 : 암흑의 시대를 열다
제9장 박정희의 죽음과 유신체제의 붕괴
제10장 전두환의 등장 : 더 쎈 놈이 왔다!
제11장 광주민주항쟁 : 민주주의에 바친 거룩한 피
1972년 10월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이 출범하고, 1979년 10월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숨짐으로써 유신체제는 무너졌지만, 1980년 수천 광주시민을 살살하고 등장한 전두환 군사독재로 김대중과 김상현은 줄곧 좌절과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두 사람 모두 연행, 구속, 고문, 추방, 가택연금으로 일관하여 공민권은 물론 시민적 권리조차 누리지 못했다. 평전은 그 고난과 극복의 이야기를 세세히 전한다.

제12장 민추협 : 김상현이 가장 빛나던 시절
제13장 2.12 총선 : 민중의 잠을 깨우다
제14장 김대중과 민한당 문제
김상현의 정치 역정에서 가장 빛난 시절은, 공민권 박탈로 ‘정치’라는 이름으로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때였다. 1980년대의 대한민국은 ‘동토의 왕국’이었다. 대학가와 재야는 줄기차게 반독재 투쟁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관제 야당은 전두환의 학정과 국민의 고통에 무기력할 뿐이었다. 김상현은 구 정치인들을 추동하여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결성, ‘정치투쟁’을 가동하는 한편, 1984년 총선을 맞아 재빠르게 신당을 창당,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켜 전두환 체제를 단숨에 흔들었다. 1987년 6월의 민주항쟁에서 야당의 역할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김상현의 그 기민한 판단력과 활동이 소설처럼 펼쳐진다.

제15장 만년 2인자 : 그 빛과 그림자
제16장 6월 민주항쟁 : 환희와 분열과 좌절
1984년의 총선이 선명 야당의 대약진으로 귀결되자, 이후 정치판은 김대중과 김영삼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김대중이 미국에 망명해 있는 동안 그를 대신했던 김상현은 설 곳을 잃어버렸다. 1987년 6월항쟁이 민중의 승리로 끝나자 김대중과 김영삼은 차기 대통령 자리를 놓고 분열했다. 김상현은 어떻게든 두 사람의 분열을 막아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고, 명분을 찾아 통일민주당에 잔류했으나 김영삼 진영에 참여하는 모양세가 되었다. 그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동교동계의 ‘배신자 프레임’은 결국 김상현을 다시 형극의 길을 몰아넣었다.

제17장 다시 김대중 앞으로
제18장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
제19장 정치를 놓다
제20장 김상현, 황혼에 지다
1997년 김대중은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이 되었다. 1971년 8대 대통령선거 이래 절치부심했던 김대중,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정치 인생 모두를 바쳤던 김상현 두 사람 모구목표를 이루었으나 그 환호의 잔치에 김상현의 자리는 없었다. 이후 애써 ‘킹 메이커’로 분식하며 자신의 정치력을 복원, 지속해 보려 했지만, 그가 형극의 길을 걷는 사이 그를 둘러싼 정치 환경은 이미 변해 있었다. 대한민국 정치사의 기린아 김상현도 그렇게 자기 시대를 마감하였다.


도서정보  :  김학민, 고원 지음  |  학민사  |  544쪽  |  값 3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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