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최고의 에세이스트가 쓰는 모성과 싱글맘 되기의 경험
수전 손택, 존 디디온에 비견되며 힘 있는 사유, 깊은 감정, 강렬한 문장으로 동시대 가장 사랑받는 에세이스트로 자리매김한 레슬리 제이미슨의 신작 『모든 아름다움은 이미 때 묻은 것』이 출간되었다. 레슬리 제이미슨은 한국에도 소개된 세 권의 전작에서 고통에 관한 글쓰기와 에세이의 윤리를 탐구하고, 자신의 알코올중독과 회복 경험을 낱낱이 탐색하며 특유의 통찰력과 지성, 엄밀하고 성실한 글쓰기로 탄탄한 독자층을 형성해온 작가다. 신작에서 제이미슨이 뛰어든 영역은 모성과 싱글맘 되기라는 가장 내밀한 경험에 대한 탐구다.
책 전체를 뒤덮고 있는 압도적인 감정은 모성의 양가적 기쁨이다. 복잡하게 얽힌 감정들과 하나로 정의 내려지지 않는 다층적인 경험을 정확하게 바라보려고 집요하고 철저하게 파고드는 제이미슨 특유의 글쓰기가 빛을 발하기에 이보다 더 맞춤한 주제는 없을 것이다. 제이미슨은 엄마이자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과 곤란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도 아이를 향한 지독한 사랑을 숨김없이 고백하고, 아이에게 주고 싶은 ‘행복한 가정’의 모습에 담긴 허위를 직시하면서도 그것을 향한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바라본다.
레슬리 제이미슨의 글쓰기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자 힘은 글의 대상이 무엇이건 정확하게 쓰고자 하는 끈질김과 성실함, 그리고 철저하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솔직함이다. 이런 강력한 솔직함의 힘은 『모든 아름다움은 이미 때 묻은 것』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책은 남편과 별거를 결정하고 13개월 난 아기와 함께 단기 임대 원룸에 들어서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제이미슨은 아이에 대한 소유욕에 가까울 정도의 사랑, 좋은 엄마가 되고자 하는 욕망, 그러면서도 ‘개인’으로서 존재하고 싶은 욕망, 양육이 예술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증거를 찾으려는 절박함, 이 모든 감정을 해부하듯 자세하게 들여다본다.
노지양, 하미나 추천!
동시대 최고의 에세이스트가 쓰는
모성, 돌봄, 자아, 예술, 삶에 대한 빛나는 통찰
엄마, 작가, 딸, 선생, 연인...
서로 충돌하는 여성의 역할과 욕망에 관한 뼛속까지 솔직하고 용감한 글쓰기
“걸작이다. 이제껏 읽은 다른 어떤 책도 이만큼 모성을 적확하게 포착해낸 책은 없다.”-헤더 하브릴레스키
“작가로서, 엄마로서, 교사로서, 끊임없이 자신을 재창조해내야만 하는 인간으로서 단 한 명의 가이드를 둘 수 있다면, 내 가이드는 레슬리 제이미슨이었으면 한다.”-매기 스미스
모성은 신화화되는 동시에 평가절하 당하는, 여전히 있는 그대로 말해지기 어려운 경험이다. 모성에 관한 많은 비판적 논의가 그러한 신화화와 평가절하를 벗겨내어 왔음에도, 여성이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겪는 곤경은 한마디로 명쾌하게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이미슨은 숨김없는 자기고백을 펼쳐냄으로써, 오로지 아주 구체적인 경험의 기록을 통해서만 묘사될 수 있는 이 복잡다단한 경험을 온전히 담아낸다. 그녀는 남편에게 “종일 아기를 보는 게 노는 일인가?”라고 반박하면서도, 양육을 “어려움, 지출, 부담으로 사랑을 재는, 오로지 그런 언어로만” 말하고 싶지 않다며 “경이로움과 감각이 마비될 정도의 소진감을 동시에 담을 수 있는 언어를” 찾고자 한다.
제이미슨은 현대에 엄마가 되는 거의 모든 여성이 공감할 법한, “수많은 자아들에 동시에 깃들어 살아가는” 복잡한 퍼즐 맞추기 같은 경험, 그리고 완전한 자율성이라는 불가능한 열망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녀는 북 투어 와중 낯선 호텔방에서 고단하게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일과 모성이 서로를 굶주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먹여 살리는” 관계일 수도 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느라 아이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한 건 아닌지 고민한다. 강의를 하다 말고 젖 먹일 시간이 되어 쉬는 시간을 30분 일찍 알리고 달려가면서 “선생”과 “젖꼭지” 사이를 휙휙 오가는 역할 바꾸기가 가져오는 현기증을 기록하고, 엄마이자 작가로 살아간다는 건 두 배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반대로 고무 밴드에 매달려 반쪽씩의 각 정체성에 손을 뻗다가 다른 쪽의 밴드에 낚아채지는 일이라고 비유한다. 이처럼 정체성의 충돌들을 대단히 신체적이고 감각적인 차원에서 묘사하는 문장들은 여성들이 처하는 곤경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이해하게끔 만든다.
이 책은 엄마이자 작가, 엄마이자 비평가로서 예술을 새로이 이해해 나가는 데 대한 책이기도 하다. 제이미슨은 딸을 데리고, 또 혼자서 여러 번 미술관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무연고 상태이기를” 원하며 아이를 갖지 않은 예술가 주디 시카고의 작품과, 미술관 안으로 요람을 들여와 생후 7개월인 자기 아이를 돌보는 퍼포먼스를 한 레아 루블린의 작품을 본다. 루블린에게서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데서 오는 위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도, 깔끔하게 선별된 사진에는 양육의 미쳐 버릴 것 같은 지속, 좌절감, 실패했다는 감각이 누락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한 남성 예술가(도널드 저드)가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작품 대부분을 창작했다는 데에 천착하고, 자기 작업에 일곱 살 딸이 협력하게끔 한 여성 예술가(웬디 레드 스타)의 작품을 뜯어보는 일은 제이미슨 자기 자신의 양육과 예술의 관계를 해명하고자 하는 시도와도 같다. 양육과 예술, 더 나아가 양육과 자율성을 필요로 하는 모든 종류의 일이 맺는 관계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제이미슨의 관점으로부터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날카롭고 철저하며 솔직한 자기 보고와 자기 변혁을 목격하는 즐거움
『모든 아름다움은 이미 때 묻은 것』은 이처럼 수많은 역할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한 여성의 성장담이자,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인생의 실패와 상실과 상처 위에서 삶을 재건해나가는 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양육과 나란히 전개되는 또 다른 이야기의 축은 결혼 생활의 불화와 이혼 과정이다. 그 역시 이혼한 부모 밑에서 성장한 제이미슨은 자신이 부모와 맺어온 복잡한 유대 관계를 돌이켜보고, 실패한 결혼 때문에 아이에게 불충분한 가정을 주게 되는 건 아닌지 염려하며, 그런 염려에 담긴 완벽하고 흠 없는 가정과 관계와 인생에 대한 스스로의 욕망을 감추지 않고 응시한다. 그리고 훼손 없는 완벽한 삶, 때 묻지 않은 아름다움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그런 기만에 매달리는 대신 “타협한 버전에 헌신”해야 함을 서서히 받아들여 나간다. 이는 대단히 보편적인 이야기이기도 한데, 모든 이의 인생에 존재할 법한 이야기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뜯어보는 글쓰기 덕에 사뭇 깊은 울림과 공감을 가져다준다.
작가 하미나는 이 책을 두고 “자기 변혁을 이어가는 작가와 동시대를 살며 그를 목격할 수 있어 기쁘다.”라고 평했다. 레슬리 제이미슨을 계속해서 읽어온 독자들에게는 이러한 변혁을 목격하는 기쁨을, 이 작가의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독보적으로 날카롭고 철저한 자기 보고를 읽는 즐거움을 선사할 책이다.
도서정보 : 레슬리 제이미슨 지음 | 송섬별 옮김 | 반비 | 316쪽 | 값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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