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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여성의 누드/황홀

출판저널 편집부 2024-04-22 11:17:24 조회수 849

“나의 살아 있음 속으로, 살아 있음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네가 걸어 들어왔다”

영국 최초의 여성, 성소수자 계관시인 캐럴 앤 더피
공감과 간절함으로 쓰인 어느 완고하고도 섬세한 세계

영국 계관시인 역사상 첫 여성, 성소수자, 스코틀랜드 출신의 시인이자 극작가, 동화작가 캐럴 앤 더피Carol Ann Duffy(1955~ )의 시집 두 권을 엮은 『서 있는 여성의 누드/황홀Standing Female Nude/Rapture』이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88번으로 출간되었다. 캐럴 앤 더피의 작품은 각종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고 전 세계적으로 백만 부 이상이 판매되는 등 비평적으로도 인정받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하는 보기 드문 위업을 달성했다.
우리의 내면에 밀착한 채로 존재하는 혐오와 폭력, 착취를 드러내 지금 여기를 들여다보게 하는 첫 시집 『서 있는 여성의 누드』, 관능의 언어로 연인의 목소리를 경험하게 하는, 그리고 싸늘해지는 순간에 담긴 섬세한 빛까지 기록한 『황홀』. 소재와 스타일이 다르지만 그 비균질함이 각각의 특성으로 긴장을 유지하며 새의 두 날개처럼 평형을 이루는 두 시집을 한 권으로 묶었다.
이 책은 정치적 · 사회적 · 철학적인 주제부터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소재를 넘나들며, 진지하면서도 가볍고 날렵하게 파고드는 특유의 위트로 섬세한 공감을 보여주는 캐럴 앤 더피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한때 나는 목소리를 가졌단다”
낱장의 목소리들의 영토로 이루어진 첫번째 시집
『서 있는 여성의 누드』(1985)

“사랑을, 사랑만을 원하는” 그는 사랑의 불모를, 우리가 협소하고도 집요하게 구현한 세계의 폭력성을 시로 구현한다. 그의 첫 시집은 “사랑을, 사랑만을 원하는” 시인이 그린 다량의 폭력 속에 아슬하게 섞여 있는 미량의 사랑의 기록이다. -「역자 후기」 중에서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현대 시인 중 한 명인 캐럴 앤 더피의 첫 시집 『서 있는 여성의 누드』에 담긴 세계는 위협적으로 산재한 균열의 세계이다. 그 세계는 폭력적인 종합 중등학교 같기도, 여섯 살 리찌가 위태롭게 놓인 난간 같기도, 벌거벗고 야윈 여자가 정물처럼 서 있는 예술가의 냉기 서린 작업실 같기도, 날카로운 호각 소리를 따라 돌고 있는 돌고래들이 갇힌 수족관 같기도, 집에 있는 생물들을 죽이고 더 죽일 것이 남지 않아 문을 밀치고 나아가는 칼을 쥔 소년의 번득이는 거리 같기도, 대공습 후에 기억을 잃고 겉뜨기 안뜨기를 흉내 내는 자신의 손을 낯설게 바라보는 여자가 앉아 있는 지하 공간 같기도 하다.
시인은 여러 목소리를 통해 자아의 구축, 현대 문화, 성평등 문제,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소외, 억압, 사회적 불평등 같은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며 유머와 진지한 통찰, 사회적 논평을 결합한다. 시인은 일상적인 대화체와 극적인 독백으로 뛰어난 성격 묘사 실력을 보여주며, 각 캐릭터에 자신을 위치시켜 캐릭터의 말투로 각 관점을 명확하게 표현하면서 매우 섬세하게 공감한다.
그중에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죽어가는 여성을 그린「슈팅 스타」와 같이 피해자의 목소리뿐 아니라, 「여가 교육」과 같이 반사회적 인물, 악당의 목소리도 담아 충격을 준다. 그들의 잘못을 어떤 식으로든 용납하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불안한 마음과 그들을 내몬 사회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오늘 나는 무언가를 죽일 것이다. 아무거나. / 나는 충분히 무시당해 왔고 오늘은 / 내가 신의 역할을 할 것이다.[…]”,「여가 교육」부분).
1985년에 출간된 더피의 시는 혐오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이 시는 1985년의 영국적인 이야기로 편안하게 읽히기를 거부한다. 우리가 편안하게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공간적 · 시간적 거리가 가능하지 않다. 『서 있는 여성의 누드』는 우리의 내면에 밀착한 채로 존재하는 혐오와 폭력, 착취를 드러내어 지금 여기를 들여다보게 한다. 출간 당시 비평가들의 큰 호평을 받은 『서 있는 여성의 누드』는 계관시인의 눈부신 시적 경력의 출발점을 보여준다.


“그렇게 나는 잠들었고,
열렬히, 열렬히 너를 꿈꾸었다”

대리석에 끌로 새긴 기도와 같은 일곱번째 시집
T. S. 엘리엇 상 수상 작품집『황홀』(2005)

『황홀』의 시들은 선물 같고, 만질 수 있는 꿈 같다. 선물은 놓여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보려고 그것을 끄르는 손길이 선물을 깨어나게 한다. 읽기는 리본의 부드러움을 감촉하며 매듭의 단단함을 공들여 풀며 선물의 시간을 길어지게 하는 행위이다. -「역자 후기」 중에서

캐럴 앤 더피의 시집 중 큰 찬사를 받은 시집 중 하나인 『황홀』은 연인의 목소리를 경험하게 한다. 『황홀』의 언어는 관능의 언어이다. 저항할 수 없음에 대한 언어이다. 감정적이고 개인적이며 비애가 담긴 이 강렬한 사랑 시들은 더피의 다른 작품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황홀』의 시들은 사랑에 빠져드는 단계(“사랑에 빠지는 것은 / 화려한 지옥”, 「너」부분)부터 관계의 끝까지 사랑 이야기에 대한 기록을 만든다. 고전적인 형식에 풍부하고 아름다우며 가슴이 미어지는 언어로 담은 (자전적인 내용으로 보이는) 시들은 인간 감정의 가장 깊게 패인 부분을 탐구한다.
총 52편의 시로 된 이 시집은 52주로 된 일 년이라는 시간을, 시작과 끝이 있으며 다시 시작으로 되돌아가는 일 년이라는 상징적인 시간을 담고 있다. 한 해가 지나가고 새해가 돌아오듯 마치 시작과 끝이 있는 사랑도 다시 시작을 맞이하길 염원하듯이.
독자들은『황홀』을 읽으며 성적 정체성과 성별을 지우고 오직 연인으로서, 사랑의 시간으로 되돌려진다. 2005년에 출판된 이 아름다운 시집은 T. S. 엘리엇 상을 수상했으며, 우리는 경험에서 깊은 운율을 발견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시가 우리 모두를 위해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도서정보  :  캐롤 앤 더피 지음  |  심지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32쪽  |  값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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