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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은 여자다

출판저널 편집부 2024-03-11 10:53:49 조회수 352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여자 그리고 죽음

여성의 죽음으로 완성되는 고전 작품 속 파괴적인 사랑을 파헤친다!

시선 총서는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담아내는 허사이트의 여성주의 기획이다. 그 세 번째 기획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은 여자다》는 공연 현장에서 취재와 비평을 병행해온 저자가 주로 공연 무대에서 활발하게 재해석되고 있는 고전 작품들을 여성주의 시각으로 다시 읽은 책이다.

여성은 사랑을 불멸로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존재인가?
사랑은 여성의 죽음을 통해서만 그 영원성과 절대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

결국 이 책에서 내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은 “사랑은 왜 여성의 죽음으로 완성되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이 질문은 필연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질문과 이어지는데, “여성은 사랑을 불멸로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존재인가?”와 “여성의 죽음을 통해서만 그 영원성과 절대성을 획득할 수 있다면 사랑이 그토록 칭송받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중략)
나는 이 책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고전 열다섯 편을 ‘여성’, ‘죽음’, ‘사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어보았다. 고전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앞서도 언급한 책 《여성, 신체, 공간, 폭력》에서 영화 〈별들의 고향〉을 ‘(대중문화에서) 죽는 여자의 시대’를 알리는 서막이 된 작품이라고 쓰며 생략한 질문인 “‘죽은 여자의 시대’는 어디서 기원했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한편 이 고전 속 죽음들은 영화와 연극, 오페라와 발레 등으로 현대의 창작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창작되며 재현되는 ‘죽음의 무한순환’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보고자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현대사회의 새로운 종교가 된 사랑
감정의 불평등은 사랑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저서 《사랑은 왜 아픈가》에서 개인의 자율성이 중시되는 현대의 사랑에 있어서도 여성과 남성이 처한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현대 문화에서 남성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심리적 자율성이나 경제적 성공과 같은 지위 혹은 위치와 관련이 있다면 여성에게는 남성과 달리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의 과업이 가임기의 시한이라는 제한된 신체성과 결부되어 시간적 압박으로 가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별에 따라 다른 형태로 가해지는 문화적 압박은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지위에 놓여 있다고 간주되는 애정 관계에 있어서도 기회의 불균등을 낳는다. 나이가 제약으로 작동하지 않는 남성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큰 차이 없이 유지되거나 혹은 나이가 들수록 기회가 많아지는 반면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선택의 기회가 줄어드는 결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이렇듯 시간에 쫓기는 여성의 감정 세계는 남성의 감정 세계에 지배당하게 된다. 이 같은 감정의 불평등은 사랑을 불평등한 것으로 만든다.
이 같은 에바 일루즈의 분석은 사실 그리 새로운 게 아니다. 사랑이 발명되고 나서 가족제도 속 개인이 부각되기 시작했고 낭만적 사랑은 신화화되었다. 사회 변화에 따라 개인의 성장이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되었고 사랑은 개인의 선택 가운데 최상위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부부 사회학자 울리히 벡과 엘리자베트 벡은 공저 《사랑은 지독한 혼란》에서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 수백 년 동안 신에 대해 얘기하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며 현대사회에서 사랑이 신흥종교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달라진 것은 종교의 반열에 오른 사랑의 지위이지 사랑 안에서 여성과 남성의 지위가 아니다. 사랑 안에서도 여성은 가부장제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불평등한 지위에 있다. 사랑 역시 가부장제 안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고전 속 사랑이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별 위화감 없이 폭 넓은 공감을 얻는 것은 자유와 평등이 보편적 가치가 된 현대사회에서도 사랑의 당사자들인 여성과 남성의 지위가 여전히 불평등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성의 죽음으로 사랑을 다시 읽는다

햄릿, 오셀로, 지젤, 카르멘, 춘희, 안나 카레니나, 보바리 부인, 살로메, 메데이아……. 시대도 나라도 작가도 모두 다른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사랑을 다룬 고전이라는 점이다. 이들 고전은 세계 문학사에서 정전(正傳)의 지위를 누리는 것은 물론 사랑이 종교가 된 시대에 사랑을 다룬 바이블로서도 새로운 권위를 가지며 오늘날까지 충성심 높은 독자들의 애정 속에 계속해서 다시 읽히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들은 후대의 창작자들에 의해 영화와 공연 등으로도 재창작되며 끊임없이 새 생명을 얻고 있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들의 또 다른 중요한 공통점은 여성이 사랑의 희생자로서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고전 열다섯 편을 ‘여성’, ‘죽음’, ‘사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어낸다.
이들 작품 속 여성들의 죽음은 매우 다양하다. 안나 카레니나처럼 사랑에 희망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카르멘처럼 사랑하는 남자에게 살해당하는 경우도, 마르그리트 고티에처럼 사랑하는 남자에게 버림받고 병들어 쓸쓸하게 죽는 경우도 있다. 책에서는 이 죽음들을 유형별로 나누어 1부에서는 〈햄릿〉의 오필리어, 〈지젤〉의 주인공 지젤, 《마농 레스코》의 마농, 《춘희》의 마르그리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작품의 동일 인물인 《제인 에어》의 버사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앙투아네트를 ‘미치거나 병들어 죽는 여자들’이라는 주제를 부여해 함께 다루었다.
2부에서는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 《보바리 부인》의 엠마,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을 스스로를 살해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로 한데 모으고, 3부에서는 그 반대로 남자의 손에 살해되는 여자들의 이야기로 《오셀로》의 데스데모나, 《카르멘》의 카르멘, 《크로이체르 소나타》의 아내를 다루었다. 3부 마지막 장에서 다뤄진 마타하리는 실존 인물이지만 그의 생애가 예술 작품으로 활발하게 재창작되고 있는 데다, 남성 집단에 의한 여성 개인의 죽음의 의미를 다시금 살펴보고자 작품 속 인물들과 나란히 놓았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남자를 죽이는 여자들’로 《물의 요정 운디네》의 운디네, 《살로메》의 살로메, 역시 다른 작품의 동일 인물인 《메데이아》와 《메데이아, 악녀를 위한 변명》 속 메데이아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4부의 이 ‘죽이는’ 여자들은 ‘죽임을 당하는’ 여자들에 비해 관심도는 현저히 떨어지지만 이 서로 다른 방향의 죽음들을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도 적잖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여성과 남성에게 사랑의 파국은 서로 다른 형태로 도달한다.
사랑이 파국에 이르렀을 때 왜 여성은 그 자신을 죽이고 남성은 여성을 죽이는가.


저자는 전작 《여성, 신체, 공간, 폭력》에서 무용 작품과 대중문화 속에서 특정 전형을 만들어낸 ‘죽는 여자’의 상을 현실 속 여자들의 죽음과 연결 지으며 죽음이 하나의 문화가 된 사회상을 파헤친 바 있다. 후속작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은 여자다》에서는 고전 작품 속에서 이 죽음들의 원형을 찾는다. 저자는 이들 고전을 다시 읽기 위해 ‘여성’, ‘죽음’, ‘사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며 여성의 죽음으로 완결성을 갖는 이 이야기들에서 사랑의 다른 한 축인 남성의 부재를 묻는다.
저자는 《카르멘》, 《춘희》, 《마농 레스코》 등이 여성이 죽은 뒤 살아남은 남성의 목소리로 전해지고 있음에 주목하는데, 작가 뒤마의 자전적 이야기로 알려진 《춘희》에서 작중 모델이 된 실제 인물 마리 뒤플레시의 생애가 왜곡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제인 에어》를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와 겹쳐 읽으며 작중 버사 메이슨의 목소리가 어떻게 지워졌는지를 따라간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여태까지 여성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음을, 이 이야기들이 남성에 의해 교묘히 편집된 이야기였음을 밝혀낸다.
여성들이 사랑이 파국에 이르러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는 것과 달리 편집된 이야기에서 남성의 역할은 빠져 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던 《마농 레스코》의 데 그리외가 둘에게 닥친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마농이 코르티잔이 되는 걸 무력하게 지켜보고, 《카르멘》의 호세가 자신이 아니라 카르멘의 목숨을 취한다. 《보바리 부인》에서도 불륜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다 파산에 이른 엠마는 죽음을 선택하지만 불륜 상대인 레옹에게는 그 피해가 닿지 않는다. 미치거나 병든 여자들인 오필리어나 지젤, 마르그리트, 버사 등은 남성에게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는 ‘무해한’ 죽음을 맞이한다. 여자들의 죽음이 매우 생생한 반면 그 죽음 이후 남자들의 삶은 더없이 흐릿하다.
한편 저자는 이별살인 가해자임에도 ‘나쁜 여성의 유혹에 넘어가 창창한 미래를 잃은 청년’으로 프레이밍되는 호세나 아내를 살해하고도 질투하는 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로 자신의 비극을 완성한 오셀로에게 더 감정이입하는 독해를 지적한다. 이는 남성이 성폭력을 저지르거나 여성혐오적 행위를 했을 때 오히려 여성 피해자보다 공감과 연민을 받는 힘패시(himpathy) 현상과도 연결된다. 저자는 또한 에필로그에서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검은 꽃》에서 묘사하고 있는 여성의 아름다운 죽음과 그악스러운 삶을 대비시키며 유독 여성들의 죽음에만 미학적인 포커스를 두고 있는 창작의 태도에도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사랑은 왜 여성의 죽음으로 완성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결국 이 질문을 통해 묻고자 하는 것은 여성과 남성에게 다른 형태로 도달하는 파국을 언제까지 사랑의 속성이나 본질이라 기만하며 외면할 것인지다. 혹시 남성의 존재를 가부장제의 주인이자 이성애 연애의 중심축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처럼 받아들이는 시각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저자는 여성이라는 렌즈로 고전을 다시 들여다본 이 책을 통해 원작이 말해주지 않는 ‘다른 면’을 발견해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말한다.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무수히 죽은 여자들을 만나온 우리에게는 이제 살아남은 여자들이 필요하다. 아주 많이.”

도서 정보  :  윤단우 지음  |  허사이트  |  334쪽  |  값 1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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