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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의 파수꾼

출판저널 편집부 2024-03-05 11:11:56 조회수 274

카드사에서 15년째 일해온 현직 심야 상담사가 한국사회 노동 현실에 가장 밀접한 상담 현장의 이야기를 꼼꼼히 써내려갔다. 스물아홉 개의 에피소드가 야간업무와 감정노동이라는 이중의 고난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인간답게 살아갈 최소한의 노동 조건을 성찰한다. 그러면서도 일의 기쁨과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를 잃지 않는 이 기록은, 도처에서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노동의 의미에 반딧불처럼 작고 환한 불을 밝힌다.




어둠을 밝히는 야간노동 이야기

깊은 밤의 파수꾼


카드사 콜센터를 거쳐 사고예방센터 카드 부정사용 모니터링 부서까지 도합 15년차 심야 상담사로 일해온 저자가 노동 안팎에서 겪은 일들을 기록했다. 상담사의 일상은 악성 민원 고객뿐 아니라 고마움을 진심으로 되갚는 고객, 상담사보다 사기범을 더 믿는 피해자, 저마다의 현실에서 안정과 탈출을 꿈꾸는 동료 등 다채로운 현대인의 군상을 만나는 과정이다. 어린 시절 이웃의 사정에 귀 기울이는 법을 가르쳐준 어머니, 군사문화의 잔재로 주입식 친절 교육을 받았던 학창시절 등 개인적인 기억의 술회와 더불어, 저자는 감정노동 종사자로서 자신이 체득해온 친절의 기술을 한발 물러나 바라본다.상담 노동에 대한 사유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그 배경인 사회로 시야를 확장하게 된다. ‘고객만족’이라는 미덕에 저당잡힌 서비스 노동자의 삶은 ‘친절, 정확, 신속’이 국민적 모토가 되어온 한국의 성장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저자는 갑과 을로 쉽게 이분화되는 사회의 토대를 들여다보고 원청도급 구조와 같은 노동 전반의 문제를 함께 짚는다. 또 어떤 에피소드들은 기술 발달에 따른 금융 범죄의 진화와 인간관계의 변모 등 지난 십여 년간 변화해온 한국사회의 면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상담이란 서로 낯모르는 고객과 상담사가 하는 것이기에, 상담에 대한 성찰은 결국 타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혐오와 폭력의 언어가 난무하는 환경에서도 대화의 가치와 타인의 의미를 긍정하는 시선을 통해, 이 책은 열악한 근무 조건을 고발하는 노동 르포의 전형에서 한발 나아간다. 도시의 밤을 지키는 수많은 파수꾼 중 하나가 된 저자는 얼굴 없는 노동이 이 사회의 빈틈을 조용히 메꾸고 있음을 증언하며, 각박한 현실에도 인간과 노동에 대한 존중과 신뢰의 태도를 잃지 않는 법을 들려준다.


도서 정보  :  정수현 지음  |  김영글 편집  |  돛과닻  |  216쪽  |  값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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