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미학』은 전쟁에서의 무차별 살인, 이민 정책 갈등,
아동 학대, 젠더 폭력 등 해마다 반복되는 사회적 문제
그리고 피해자인 약자들의 삶을 동시대 예술가와 철학자의 시선으로 분석한 예술 에세이다.
미학과 철학을 전공한 저자 한선아는 이 책에서 부당하게 죽어간 이들을 되돌아보거나, 그들이 사라진 흔적을 더듬어 재현하거나, 우리가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비참한 삶의 진실을 끈질기게 파헤쳐 제시한 동시대 미술을 소개하고, 다양한 철학 이론으로 그 내용을 풍부하게 확장한다.
이를 위해 당대 중요한 사상가 9인(주디스 버틀러, 노엄 촘스키, S. 매슈 리아오, 리베카 징크스, 김현경, 재스비르 푸아, 마사 누스바움, 로버트 스클로트, 로베르토 에스포지토)의 이론과 예술가 14인(테레사 마르골레스, 모나 하툼, 하룬 파로키, 이보람, 임윤경, 포렌식 아키텍처, 이토 바라다, 윌리엄 포프 L, 캐럴린 라자드, 이강승, 콜린 와그너, 제니 홀저, 조혜진, 최선)의 작품이 동원되었다.
취약성과 비폭력, 미디어와 프로파간다, 아동 학대와 돌봄, 대량학살과 재현, 인권과 인간성, 장애와 불능화, 동성애와 인류애, 성폭력과 전시 강간, 이민과 이주 문제를 분석한 이들의 시선을 치열하게 좇다 보면 우리가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어떤 세상의 일부가 모두에게 가닿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펼쳐지리라 믿는다.
지금, 바로, 여기. 혐오와 차별, 폭력으로 가득한 세계를 벗어나 소외된 자를 위해 재조형될 다정하고 따뜻한 세계의 건축법, 그 구축과 상상에 관한 진지한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가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어떤 세상의 일부가 모두에게 가닿기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TV나 라디오를 통해 혹은 메신저나 타인의 입을 통해 접하게 되는 소식들은 넘치도록 많다. 그중에서도 유독 자주 들리는 키워드가 하나 있는데 바로 ‘죽음’이다. 하루라도 죽음에 관한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날이 없다. 부모에게 학대받아 사망한 어린이, 빈곤에 허덕이다 외로이 생을 마감한 신원 불명의 존재, 반복적인 집단 강간을 겪은 후 살해되거나 산 채로 불태워진 여인, 전쟁 중에 길거리에 널브러진 수많은 시체들… 죽음은 어느새 흔하면서도 희귀한 것, 익숙하면서도 충격적인 것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죽음이 반성 없이 되풀이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차별, 힘과 권력을 무기 삼아 약자에게 퍼붓는 폭언과 폭력 등은 누군가의 꿈과 희망을 앗아갔고 이윽고 생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타인의 비극에 대해 우리는 늘 두 겹의 거리를 두지 않았던가. 내 것이 아닌 고통과 폭력은 그저 안타까운 한숨 한 번으로 넘기고, 이 세상의 모든 절망을 다 알 수 없으니 어떤 슬픔은 못 본 척해도 괜찮다는 손쉬운 연민만을 남긴 채 자꾸만 무정해지는 우리. 왜 우리는 이토록 무정해진 것일까? 누가 우리를 이토록 무정하게 만든 것일까?
저자 한선아는 런던 예술대학교에서 예술과 철학을 전공하며 주디스 버틀러의 이론에 큰 관심을 두었고, 버틀러의 취약성 이론을 주제로 논문을 작성하였다. 이제는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들을 조명하고 피해자인 약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에 앞장서고자 한다. 그 시작점이 될 이 책에서, 본인의 이야기와 사상가들의 이론, 현실과 유리되지 않고 약자들의 목소리를 가장 아름답게 대변하는 예술작품을 한데 모아 전한다. 더 이상 누군가의 부당한 죽음을 개별 사건의 불행하고 우발적인 발생으로 생각하지 말자는 저자의 주장처럼, 소외된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제도적 문제의 종합적 결과로 조명하여 이를 책임의 영역 안에 재배치하는 새로운 사유가 시급하다.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해지기를 낙관하며
태동한 문장, 작품, 그리고 사상들의 합창
이 책에는 세계 곳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회 문제들을 아홉 가지 주제로 분류하고 각각의 주제를 뒷받침하는 사상가의 이론과 이를 아름답게 시각화한 예술가의 작품을 실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젠더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는 우리 모두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삶의 근본적 현실을 ‘취약성’으로 명명하고 이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철학 이론과 수행성을 중심으로 하는 젠더 이론을 펼쳐 보인다. 그의 위태로운 정치, 그 상호의존성에 기반한 비폭력적 유대의 시각적 가능성을 가장 감각적인 방식으로 제안한 작품이 바로 멕시코 출신 현대 예술가 테레사 마르골레스의 〈공기 속에서〉다.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 비눗방울은 관람객의 피부 위로 가라앉으며 소리 없이 파열한다. 비눗방울의 재료가 시신을 닦은 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추락하던 비눗방울은 예기치 못한 테러로 다가온다.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로 평가되는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비판자 노엄 촘스키. 그는 놀라운 통찰력으로 오늘날의 사회에서 과연 누구의 생각과 의견이 공론장에 표출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자격의 득실을 결정하는 무형의 조작은 어떤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지를 살핀다. 이처럼 미디어의 보도와 현실의 간극에서 영원토록 유예되는 존재, 그들의 현실을 강렬한 이미지로 제시하는 작가 모나 하툼은 〈협상 테이블〉에서 고통의 언어를 희미한 숨결로서 번역하며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고자 한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역사 이론가 리베카 징크스는 수많은 학살의 재현이 홀로코스트라는 패러다임 안에서 반복되어 온 현상임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실제 학살이 일어난 팔레스타인의 작은 어촌 마을 탄투라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린 포렌식 아키텍처는 건축적 증언을 통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언어 없는 사물이 감각한 비극의 파편을 이어 붙여 하나의 퍼즐로 완성하는 이들의 작업은 뒤늦은 위패처럼 부당한 죽음에 영면의 자리를 내어주며 그들을 위로하고 있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이라는 것은 일종의 자격이며, 스스로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확인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환대’라고 주장한다. 그와 반대의 동력으로 사람의 자리를 ‘박탈’하는 흔적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 이토 바라다의 사진 연작 〈수면자들〉이다. 사진 속 피사체들은 김현경이 문장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존재들, 그러니까 자리를 허락받지 못한 자들, 정착이 허용되지 않은 이들, 그렇게 뿌리 뽑힌 꽃처럼 자꾸만 넘어져야 했던 인간들을 시각적으로 예시하는 징표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이처럼 취약성과 비폭력, 미디어와 프로파간다, 아동 학대와 돌봄, 대량학살과 재현, 인권과 인간성, 장애와 불능화, 동성애와 인류애, 성폭력과 전시 강간, 이민과 이주 문제를 치열하게 분석한 사상가들과 예술가들의 시선을 좇다 보면 언젠가 우리가 꿈꾸어 볼 가치가 있는 세계, 그러한 세상이 펼쳐지지 않을까.
도서정보 : 한선아 지음 | 미술문화 | 208쪽 | 값 1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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