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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출판저널 편집부 2024-12-23 11:32:42 조회수 104

“이제, 혼자가 되어서. 사람들은 모두 걸어가야 한다.

지도라곤 없는 자신만의 삶으로.”


조경란 소설세계의 기원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두 작품이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데칼코마니




2024년 이상문학상 그리고 김승옥문학상을 거머쥔 등단 28년 차 소설가 조경란의 초기 대표작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을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제33권으로 엮어 선보인다. 『식빵 굽는 시간』은 1996년 제1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으로, 바로 그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갓 데뷔한 신인이었던 작가가 써낸 첫 장편소설이다. 그로부터 3년 후, 두번째 장편소설 『가족의 기원』을 세상에 내놓은 그는, 첫 장편소설에 주어졌던 “독자를 사로잡는 작가 특유의 아우라를 경험케 한다” “‘생략과 속도’의 기법 활용이 탁월하다” “문체가 안정되고 세련돼 있다” 등의 찬사를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한번 체감케 하는 동시에, 첫 장편의 연장선상에서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화해나갔다.
“누가 나를 신세대 작가라고 규정하면 나는 싫어할 것”(문학동네작가상 수상 인터뷰)이라고 답했던 패기 넘치는 신인 시절을 지나, 조경란은 삼십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하나의 수식어로 고정되기를 거부하며 작가적 역량을 갱신하는 중이다.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두 작품은 서른을 앞둔 일인칭 여성 화자가 ‘나’를 둘러싼 세계와 투쟁하고 불화하며 자기 자신을 탐구해가는 여정을 그린다.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의 장정을 입은 두 소설을 다시 그리고 함께 읽는 일은 가족에서 파생한 자아 찾기에 천착해온 작가의 뿌리에서 출발해, 한 소설가가 착실히 축적하고 확장해나간 세계의 지형도를 가늠하는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식빵 굽는 시간』에는 베이커리 창업을 꿈꾸는 주인공 ‘여진’이 빵을 굽는 장면이 삽화처럼 끼어 있다. 작품 전반에 은은하게 배어 있는 달콤한 빵냄새는 가족을 잃고 홀로 남겨진 ‘여진’의 상황과 대비를 이루며 그 황량한 내면을 부각한다. 그러나 알맞은 온도에 이르렀을 때 부풀어오르는 식빵의 시간처럼, 여진의 쪼그라든 자아 또한 “인생의 불안한 한 시기”(75쪽)를 통과하는 사이 서서히 부피감을 띠게 된다. 『가족의 기원』은 경제적 몰락으로 와해되어가는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기만의 방’을 갖고자 하는 ‘정원’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가 집을 떠나 머무는 ‘호수장 삼백육호’ ‘한신연립주택 이백팔호’는 안주하지 못하고 떠도는 정원의 처지를 대변하지만, 자신이 의탁하고 있던 대상에 하나씩 이별을 고하는 서사 속에서 언젠가 스스로의 힘으로 서게 될 미래를 예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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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소설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일인칭 화자 ‘여진’과 ‘정원’은 서른을 앞둔 미혼 여성으로, 음울하지만 예리한 시선으로 세계 한가운데에 위치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깊고 어두운 내부로부터의 침잠 끝에 다시금 뜻밖의 방향을 찾아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그들 곁에 있는 가족 또는 연인이 ‘나’를 구성하는 정체성에 기여하는 동시에 ‘나’를 완전히 파괴하려 드는 익숙한 타자라는 사실과 처절히 대면하고 있다. 지극히 사사로운 애정을 주고받으며 질기고도 억센 고통을 수반하는 관계, 끊으려야 끊어지지 않는 불완전한 사랑의 굴레에서 그들은 매달리고 신음하다가 기어이 탈주한다. 그러니 서른의 초입에 다다른 여진과 정원의 서사는 그 자체로, 물리적인 성장이 멈춘 이후 또 한번의 정신적인 성장을 도모하여 ‘자기만의 방’을 찾아 떠나는 모험담에 대한 은유다. _염승숙(문학평론가)


도서정보  :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360쪽  |  값 1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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