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보다 오늘을 살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을. 이 빛을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김승옥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 문진영이 선사하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마음에 관한 가장 섬세하고 따스한 이야기
『담배 한 개비의 시간』(창비 2010)으로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이후 줄곧 외지고 그늘진 곳에 드는 조그마한 햇볕과 그 온기를 좇아온 작가 문진영. “단지 삶의 독특한 취향이나 스타일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윤리의 차원”(문학평론가 권희철)에 도달했다는 평과 함께 2021년 김승옥문학상 대상을 거머쥔 그가 첫번째 경장편소설 『미래의 자리』를 펴냈다. 창비의 젊은 경장편 시리즈 소설Q의 열아홉번째 책으로, 친구 ‘미래’의 죽음이라는 상흔을 공유한 세 인물의 일상을 담담하고도 애틋한 시선으로 따라가며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문진영은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이십대 후반의 인물들을 화자의 자리에 세워둠으로써 개인의 아픔뿐 아니라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시대적 아픔까지도 짚어 보인다. 특히 미래의 목소리를 빌려 살아남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대목은 무감각해져 있던 우리의 마음에 고요한 파문을 일으킨다. 회복과 성장을 기대하는 섣부른 태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흉터를 바라보는 올곧은 시선이 담긴 『미래의 자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깊은 위로로 다가올 것이다.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안고도 살아갈 수 있음을,
내일이 없는 자리에도 평온한 오늘이 찾아들 수 있음을
미래가 예고 없이 세상을 떠난 이후, 더는 소설을 쓸 수 없게 된 소설가 지망생 지해와 고통 없는 사랑의 존재를 믿지 못하는 자람,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아픈지 모를 만큼 무감각해진 나래는 하루하루 외줄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는 일상을 보낸다.
한때 신춘문예 최종심까지 오른 적이 있는 지해는 이제 매일 무기력하게 방에 누워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다. 반복되는 하루에 갇힌 어느 여자애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오늘이 어제 살아본 오늘”일 뿐인 아득한 상황에서 이야기는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뭔가를 사랑하는 것도, 사랑받는 것도 모두 버겁”다고 생각하는 지해에게 오늘은 견뎌야 할 무엇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자람은 과거 사고를 당한 아버지를 간병하느라 지망하던 대학에 가지 못했고, 이후 가정폭력을 가하기 시작한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첼리스트의 꿈도 포기해야 했다. 그런 자람은 일찌감치 독립한 동생 우람과 번듯한 첼리스트가 된 동기들을 부러워하며 자신에게도 가능했을지 모를 미래를 그려보지만, 어머니를 버릴 순 없다는 생각에 자해까지 해가며 매일을 버틴다. “고통 없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자문하면서.
미래의 쌍둥이 자매인 나래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신과 달리 세상을 잘 살아가는 듯 보였던 미래를 부러워했다. 동시에 미래는 나래에게 “세상이 다 몰라도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었다. 그런 미래의 죽음은 나래로 하여금 삶을 향한 모든 의욕을 잃게 만들었다. 멀쩡해 보이는 겉모습 뒤로 삶에 대한 회의를 지닌 채 “고치 안에 몸을 숨기는 애벌레처럼” 막을 치고 살게 된 나래. 그런 나래에게 어느 날 지해가 전화를 걸어와 말한다. “……살아주면 안 될까. 내 소원이야.”
한때 미래를 잃어버린 적이 있는 당신에게
애틋하게 건네는 또 한번의 오늘에 대한 믿음
이처럼 내일을 잃어버린 채 오늘마저 위태로이 견디는 이들을 붙드는 것은 다름 아닌 서로의 손이다. 자람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온 지해는 얼결에 작은 음식점에 취직해 일하기 시작하고, 일상의 곳곳에서 마주하는 이들의 손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자신을 잡아 이끈 자람의 손, 목가구를 만드는 동료 용이씨의 손. 화분을 가꾸고 길고양이를 돌보는 엄마의 손과 김밥을 마는 자신의 손. 그 손들을 통해 지해는 “뭔가가 선명하게 만져진다는 것”, “자신의 손을 거쳐 몸을 가진 무엇이 만들어진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한번 키보드 위에 손을 얹어본다. 일단은 그저 오늘치의 “한 문장만 나아가자,고 생각”하며.
자람은 자신에게 첼로 레슨을 듣는 민서를 볼 때마다 흔들리는 마음을 느끼지만, 헛된 기대는 고통만 안겨줄 뿐임을 되뇌며 마음을 접으려 한다. 그럼에도 자꾸만 민서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한 자람은 문득 생각한다. 민서와 함께 산책하고 식재료를 사서 나란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신의 “매일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다시 한번 ‘매일’을 그려보게 된 자람은 뜻밖에 고양이 두마리를 키우게 되며 그들이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날 눈을 감을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겠다고 생각하고, 타인과 자신을 고통 없이 사랑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간다.
살아달라는 지해의 말을 듣고서야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나온 나래는 미래의 유품을 살피다 우연히 미래의 블로그를 발견하고, 거기 적힌 일기들을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미래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미래야. 나는 네가 했던 말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
고요함 속에서 나래는 발톱 끝의 욱신거림이 아주 조그만 심장박동처럼 느껴진다는 걸 알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밤들을 이렇게 깨어 있게 될까.
그러나 그 밤들이 아주 고통스럽지만은 않을 거라는 걸, 나래는 알았다. (216~17면)
소설은 지해, 자람, 나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미래의 일기를 교차해 보여줌으로써 각각의 오늘을 한데 겹쳐 보인다. 그로써 우리는 소설의 프롤로그 격인 0장에서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던 미래가 공기방울이 된 친구를 일컬어 “그애가 죽은 게 아니라, 그저 다른 형태로 바뀌었을 뿐이라” 말했듯 미래 역시 다른 형태로 그들의 오늘에 자리하고 있음을, 미래의 자리가 영영 비어버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와 함께 이야기의 끝에 놓인 미래의 일기는 작중인물들과 읽는 이 모두에게 선명한 희망을 남긴다.
그러면서도 내가 삶을 이리도 아름답게 느낀다는 것은 모순일까.
대단한 모험보다는 소소한 위험들을 함께하면서 그 떨림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갖고 싶다.
겁낼 줄도 알고 용기 낼 줄도 아는 사람을.
돌아볼 줄도 알고 내다볼 줄도 아는 사람을. (219면)
“상처를 극복하고 얻어낸 성장을 소망하기보다 흉터를 안고 유연하게 휘어지”(이서수, 추천사)면서 살아나가기로 결심한 이들의 이야기는 아픈 데서 느껴지는 욱신거림조차 심장이 뛰고 있다는 증거임을, 잔바람에도 흔들리되 결코 끊어지지는 않는 버드나무처럼 살아갈 수 있음을, 마침내 내일이 없는 자리에도 평온한 오늘이 찾아들 수 있음을 실감케 한다.
이렇듯 문진영의 소설은 의식하지 않는 동안에도 우리를 끊임없이 삶 쪽으로 이끄는 호흡처럼 더없이 꾸준하고 그윽한 방식으로 읽는 이를 추동한다.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여겨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이가 있다면 “그를 위해 폭우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와 “도망치지 않고 시커먼 먹구름 아래 우산도 없이 서 있기로” 하는 선택을, “들리지 않아도 함께 소리 질러 울기로” 하는 결심을 가져주기를. 서로의 손을 붙들어주기를. 그때 찾아올 또다른 오늘을 기다려주기를. 그러니 “부디 살아주”(작가 노트)기를. 어느덧 한국문학의 미더운 이름으로 자리잡은 문진영의 소설이 그 지극한 마음을 안고 여기 도착했다.
도서정보 : 문진영 지음 | 창비 | 240쪽 | 값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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