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사랑을 믿었다면 결코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의 사랑, 나의 자랑, 나의 수치, 나의 벡터 | 퀴어-문학
전승민 첫 평론집
문학평론가 전승민의 첫 평론집 『퀴어 (포)에티카』를 문학동네에서 펴낸다. “안정된 문장력과 박진감 넘치는 해석, 탄탄한 구성이 돋보이는 글”(대산대학문학상), “작품론이면서도 작가론으로 확장되고, 작가론에서 문학론으로 다시 심화되는 글”(서울신문 신춘문예)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2020년대 한국문학 비평장에 첫발을 내딛은 전승민. 여성 문학에서도 이성애자 여성, 퀴어 문학에서도 시스젠더 게이로 정향된 흐름을 심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문학적 결기와 야심으로 가득한 퀴어-페미니즘 비평을 쏟아내며 한국문학장의 ‘퀴어적 전회’ 이후를 대표하는 평론가로 자리매김했다. 데뷔 3년 반 만에 선보이는 첫 평론집이라는 이 경이로운 행보는 끊임없는 호명과 성실한 응답을 뜻하기도 하지만, ‘사랑’이라는 말로밖에 설명될 수 없는 기이한 에너지와 순정한 열정이 만들어낸 쾌거이기도 하다.
제목 ‘퀴어 (포)에티카’는 전승민의 비평세계와 그 지향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고안된 문구이다. ‘Queer for Ethica’-퀴어를 위한 윤리학이자, ‘Queer Poetica’-퀴어한 시학을 한데 묶은 『퀴어 (포)에티카』는 신실하고도 젊은 한 비평가의 문학적/비평적 영토를 개척하고자 한 기획인 동시에 2020년대에도 이어지는 뜨거운 분투와 쇄신의 궤적을 가감도 미화도 없이 담아낸 기록에 다름 아니다. 물론 “퀴어의 사랑과 그 윤리는 퀴어로 정체화한 이들만의 배타적 담론”이 아니기에, “퀴어와 비-퀴어는 같은 세계를 공유하며 어떤 식으로든 부대끼며 살아”가기에, “나와 다른 존재는 차이로써 분리되지 않고 바로 그 차이로 인해 연결”(「레즈비언 구출하기」, 47쪽)되기에 이 윤리학도 시학도 우리 모두의 것임을 새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섬세함과 과감함이 공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는 『퀴어 (포)에티카』에는 사랑이란 말로 다 담기지 않는 사랑이, 퀴어라는 말로 다 포섭되지 못하는 퀴어함이 ‘발견되기 위한 비밀’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퀴어’는 그러한 직시의 과정 속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배움을 주는 언어다. 우리는 ‘퀴어’를 통해 인간의 아픔과 수치, 악행과 구원을 일시에 목격한다. 비평의 사랑이 작품을 지켜내고 그것이 나아가는 새로운 길의 시작을 마련하는 일이라면 퀴어의 사랑 또한 그러한 전위를 모자람 없이 수행한다. 어떤 사랑은 열렬히 사랑하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정치적인 변혁을 발생시킨다. 정체성 정치에 국한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시발점으로 삼아 그간 적층해온 자신의 담론을 스스로 파괴하길 마다않는 ‘퀴어 문학’은 그런 점에서 가장 ‘문학적’이다. _「책머리에」에서
“전승민이 쏘아올린 이 지적이고 퀴어한 불꽃놀이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_심진경(문학평론가)
‘발견되기 위한 비밀’들을 촉감하는 손길
퀴어의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 내딛는 발걸음
『퀴어 (포)에티카』는 총 5부로 구성되었다.
1부 ‘the L(esbian) word’는 퀴어 소설 중에서도 레즈비언이 등장하거나 레즈비언으로 ‘읽을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을 다룬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또 조명된 여성-서사에서, 여성과 여성 간의 관계성을 연대와 우애로 축소 독해하지 않으며, 이성애 제도와 문화를 탈주하고 초과하는 퀴어한 시선으로 읽어낸 작품/주제론을 배치했다. 새로운 담론의 축복 속에서 오정희의 초기작을 퀴어하게 다시 읽어내는 「괴괴한 노랑의 사랑: 레즈비언 성장기」는 고전이 탄생하는 한 원리를 발견하는 기쁨을 선사한다. 작가가 각별한 애정을 가진 김멜라의 두 단편소설을 통해서는 “알 수 없음이야말로 퀴어의 자연”이라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차이들이야말로”(「몸짓의 진화」, 116쪽) 퀴어함이라는 사실을, 단지 섹슈얼리티의 정의에 국한되지 않는 퀴어의 스펙트럼을 촉감할 수 있다.
2부 ‘퀴어 포 에티카(Queer for Ethica)’는 가장 최근에 발표한 글들을 모은 만큼 그 열기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 책에서도 가장 문제적이고 도발적인 평문을 담은 2부에서는 비평 그 자체의 시선을 퀴어화하는 작업과 더불어 이미 합의된 ‘도덕을 빙자한 윤리’가 아닌, 개별 주체들이 문학 속에서 ‘스스로 생성해내는 자기 윤리’의 면모들을 발견하고자 한다. 2020년에 벌어진 오토픽션과 윤리의 문제를 전면 재검토하는 「퀴어 일인칭을 위한 변론: 오토픽션과 문학의 윤리성에 관하여」는 ‘재현의 윤리’에 관한 가장 현재적이고도 심도 깊은 한 응답을 만날 수 있기에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한편 비평가 저 자신마저 심문하는 「가장 음험한 가장」에서는 ‘퀴어적 직시’에는 성역이 존재하지 않으며 “새로운 것을 규범화하여 제 몸을 강화하려는 욕망 속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고 안전한 자질로 환원하지 않고 정직하게 견인해야 한다”(248쪽)는 서늘한 결기를 목도한다.
도서정보 : 전승민 지음 | 문학동네 | 588쪽 | 값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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