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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기축옥사의 이해 <사실을 만난 기억>

출판저널 편집부 2024-08-23 15:56:33 조회수 218

기축옥사 논의의 전말을 톺아보며 역사 탐구의 의미를 반추하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다. 이때 ‘사실’은 무엇인가. 저자는 사실을 “시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활동 또는 그 결과로, 구조, 의지, 우연의 세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정의한다. 이 책은 ‘기축옥사’를 둘러싼 논란을 검토하고 역사를 대하는 자세를 논한다.



1. 기축옥사를 둘러싼 오독들
기축옥사는 선조 22년 정여립이 역모를 꾸민다는 고변에서 시작된 대규모 옥사를 가리킨다. 만 2년 가까이 이어진 옥사의 와중에 수많은 인물이 연루되어 죽임을 당했다. 정여립은 당색으로는 동인에 속한 인물이다. 전라도 출신 인물로 전북 전주와 진안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다. 죽임당한 인물 중 상당수가 동인 계열이고, 전라도 출신이다.

이만큼 들었는데 동서 대립, 지역 차별 같은 단어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당색’, ‘지역’이라는 프레임이 작동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프레임을 보강하는 주장이 제기되고, 연구가 발표되어 왔다. 기축옥사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 중 어쩌면 가장 자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발의 노모와 어린 아들의 고문사와 관련해서는 그 원흉을 색출하려는 방향으로 논점이 뒤틀리기까지 했다.

원색적인 비난으로 칠해진 사건은 살피지 않고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사실은 어떠했던가. 기축옥사는 ‘모반’ 자체를 중심에 두고 관찰할 때 그나마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당쟁론, 지역 차별론 등에 기초하여 사건을 바라보면 시각이 환원주의에 빠지기 십상이다.

‘모반 자체’에 집중해서 사건을 보다 보면, 모반 소식이 조정에 처음 전해졌을 때 동인, 서인을 떠나 정여립이 모반을 일으키려 했다는 사실 자체를 믿지 못하고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인다. 정여립은 홍문관 수찬을 지낸 인물로, 그는 경연에 참여하여 국왕과 세미나를 하는 근시(近侍), 곧 청직(淸職)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인물 교류를 보면 소위 동인, 혹은 서인에 속하는 인물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이발의 노모와 어린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을 누구 한 사람에게 묻는 것은 불가능하다. 추국청은 다수의 관원이 심문하는 장소이다. 기축옥사는 국왕이 직접 심문했던 친국, 국왕이 임명한 대신이 위관(심문 책임자)을 맡은 정국, 의정부·사헌부·의금부가 합좌하여 국문했던 삼성추국 등으로 진행되었다. 특정 위관 한 명의 의향이 판결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발 노모와 어린 아들의 죽음 당시 위관으로 지목되어온 두 사람, 정철과 유성룡을 둘러싼 사료를 분석하여, 당쟁 프레임을 거쳐 왜소해진 인물상을 입체적으로 복원해 낸다. 그들에 관한 여러 기록과 행장 등을 읽다 보면, 새삼 그들도 기축옥사의 와중에 나름대로 선한 의지를 발휘하며 한 시대를 살다 간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기축옥사를 지역 차별로 보는 선입관에도 주의한다. 기축옥사로 전라도 사람의 피해가 컸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정여립의 연고지가 전라도였기 때문으로, 전라도라 피해를 받았다고 보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이 혼동이 보다 문제인 이유는 전라도를 사건의 무대가 아니라 사건의 원인으로 봄으로써 전라도를 차대한다는 어떤 ‘의지’를 상정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태도는 진상 파악을 곤란하게 함은 물론 사람들의 상처를 자극하여 불필요한 긴장과 오해를 부추길 수 있다. 또한 저자는 기축옥사로 인해 호남 차대가 나타났다는 의견에도 반대한다. 그 근거로 제시되는 문과 급제율이 주장과 다른 흐름을 보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여립을 지역의 대표 인물로 현창하는 과정에서 동원된 근대주의 프레임에도 주의를 촉구한다. 여기서 근대주의란 “공화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등의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를 인류의 이상이나 목적으로 보는 관점”을 의미한다. 정여립의 사상을 공화주의로 포장해 그를 영국에서 공화정체를 수립한 올리버 크롬웰에게 견주거나, 반봉건적 요소를 강조해 정여립의 모반을 프랑스 혁명에 비기는 연구 등이 근대주의적 프레임의 영향을 받은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근대주의는 서유럽 중심의 단선적 역사관으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해석에는 보다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정여립의 사상’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매우 적은데도 불구하고, 무리한 비약과 추론을 통해 ‘사상’이 유추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여립의 사상’을 ‘공화주의’, ‘사회주의’로, ‘모반’을 ‘혁명’으로 보는 것 등은 의욕이 앞서 사실을 호도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2. 건강한 기억을 위하여
기축옥사를 둘러싼 사실들은 당대부터 지금까지 두고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난독상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뭐라고 해도 첫 번째 원인은 기축옥사와 관련한 원사료의 부재 또는 부실이다. 사안의 중대성과 사건의 규모로 보아 양질의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할 것 같지만 기축옥사에 관한 사료는 매우 성기다. 옥사가 마무리될 무렵 임진왜란이 발발했고 전쟁통에 사초, 추국청 문서 등 참고할 만한 사료가 상당 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억울한 심정과 애매한 상황이 얹히면서, 사람들의 기억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처음부터 의도했던 곡해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시작은 부실한 기록과 피해자의 다친 마음이었을 것이다. 즉 관련자의 원망과 억울함이 빈약한 기록에 스며들어 균열을 내고, 그 틈을 바람 섞인 거짓 기억으로 메꾸어 버린 게 아닐까. 그러나 상상이 앞선 설익은 주장들은 사실 관계를 난잡하게 뒤섞어 버렸고, 상대방은 물론 자신의 상처도 덧내는 결과를 불러왔다. 그렇게 설왕설래하는 사이 의도치 않은 실수가 더해지고, 변질된 사료 위에 다시 말을 쌓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원본 사료 자체가 부실한 데다가, 긴 시간 오류가 쌓이고, 오류에 기반한 갑론을박이 이어져서 사실과 거짓, 기억과 망각이 뒤섞여 버린 경우 ‘사실’은 어떻게 구해 내야 하는 걸까? 저자는 이 문제를 ‘다문궐의(多聞闕疑)’의 자세로 풀어 내기로 한다. 다문궐의는 『논어』 「위정爲政」 편에 나오는 말로 “많은 사료를 검토하고 의심스러운 데는 놔두는” 태도를 의미한다.

저자는 『선조실록』, 『선조수정실록』 등의 공적 사료, 숙종 대 유생 양몽거의 상소 외 반박에 반박을 거듭한 상소들, 기축옥사에 관한 후대의 기록들과 그 기록에 관한 기록 등을 비교 분석하며 부정합한 요소를 골라내고, 보다 타당한 사실을 도출하며 엉킨 기억을 정리해 나간다.

3. 역사 공부의 의미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거쳐도 보는 눈은 다양하고, 사실은 완벽하지 않다. 결국 우리는 언제나 갈등의 소지를 안고 서로 다른 기억을 품은 채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선 본보기가 있다. 광해군 대 편찬된 『선조실록』, 여기에 오류가 많다고 하여 인조 대 편찬한 『선조수정실록』이 그것이다. 조선 사람들은 두 실록을 다 남겨 놓았다. 원래의 기록과 수정한 기록을 모두 알 수 있다고 해서 ‘주묵사(朱墨史)’라고도 부르는 격조이다. 이는 스스로는 사실을 기록하였다고 해도 그 기록에는 판단과 해석이 작용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그 판단을 후대에 유보하는 문화적, 정치적 행위이다.

주묵사의 기록을 분석하고, 다문궐의를 통해 타당한 사실을 도출한 후 저자는 ‘춘추필법(春秋筆法)’을 반추한다. 춘추필법은 공자가 노나라의 역사서 ‘춘추’를 기반으로 편찬한 『춘추』의 문체와 서술 방법으로 춘추직필이라고도 불린다. ‘직필(直筆)’은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적고자 하는 태도 내지 그 서술이다.

그런데 『논어』 「자로(子路)」 편에서, 공자는 자기 마을에 아버지의 범죄를 고발한 정직한 사람이 있다며 자랑하는 섭공에게 우리 마을은 그와 다르다며 자식이 부모의 죄를, 부모가 자식의 죄를 숨겨주는 것 속에 ‘곧음[直]’이 있다고 응수한다. 만약 춘추필법의 곧음에 저 ‘곧음’의 의미가 담겨있다면 어떨까. 무엇이 정의인지 진실인지도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인정(人情)을 벗어나는 정의(正義)가 과연 인간과 사회의 평안에 기여”하는 걸까?

저자는 “서로 다른 기억을 함께 양해하며 풀 수 있으며, 서로 둘러앉아 해결할 수 있는 기대”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과연 어찌할 수 없는 ‘우연’과 단단한 ‘구조’ 사이 다문궐의의 태도로 쉽게 의심하지도 함부로 판단하지도 않으며,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을 품고, 공감할 수 있는 진실을 찾아나가는 일을 우리의 ‘의지’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역사 탐구의 방법들이 독자에게 “연대의 삶, 공감의 삶, 배려의 삶을 확장”하는 도구를 제공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다.

도서정보  :  오항녕 지음  |  흐름출판사  |  276쪽  |  값 1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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