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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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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무엇이 되어 어떻게 말할까 <말씨, 말투, 말매무새>

출판저널 편집부 2024-08-23 15:53:21 조회수 222

이 땅의 모든 말씨와 말투에서 길어 올린

품격 있는 언어생활을 위한 제안

규범과 사전 밖 현실에서 살아 숨 쉬는 한국어의 멋과 맛에 천착해 온 국어학자 한성우. 그는 이 책에서 태어나고 자란 땅에 따라 달라지는 말씨, 세대와 성별 및 지위 등 현재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말투의 특징을 소개하고, 그 둘을 말의 씨줄과 날줄로 삼아 펼쳐지는 사람들의 언어생활을 탐색한다.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해야 아름답고 품격 있는 말매무새, 관계를 가꾸는 데 도움이 되는 원활한 말하기 방법을 갖출 수 있는지 궁리한다. 바람직한 언어생활은 누군가가 강요하거나 의무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말의 주인들이 스스로 찾아내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 책이 그 여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말의 씨줄과 날줄을 따라가는
슬기로운 한국말 생활


말씨는 흔히 사투리라고 말하는 지역 방언이고, 말투는 연령, 성별, 계층 등에 따라 다른 사회 방언이다. 이 두 가지가 말의 씨줄과 날줄이 되고, 서로 엮여서 말짜임과 말매무새로 드러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실에서 쓰이는 모든 말들을 두루 탐색하며 바람직한 말매무새란 어떤 것인지 같이 고민해 보자고 제안한다. 바른 말, 맞는 말이란 규범이나 언어 예절에 따라 정해지는 게 아니며, 강요, 당위, 의무로 들이밀어서도 안 된다. 바람직한 말매무새는 이 땅의 모든 말을 하는 말의 주인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씨, 이 땅의 모든 말은 아름답다

표준어는 품격 있는 좋은 말이고, 사투리는 부끄럽고 창피한 말인가? 은연중에 그런 인식도 있지만, 표준어는 말씨가 다른 이들끼리 보다 원활히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규범상의 언어일 뿐 그것이 우월하거나 뛰어난 말이 아니다. 또한 세상에 완벽한 표준어를 쓰는 사람은 없으며, 서울 사람들도 사실은 표준어가 아니라 서울 사투리를 쓰고 있다. 누구나 자기가 자란 땅에서 비롯된 저마다의 사투리를 쓴다.
사투리를 빼놓고서는 한국어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없으며, 한국어의 가능성도 크게 위축된다. 경상도 말씨는 ‘어’와 ‘으’를 구별하지 못한다고 놀림의 대상이 되지만, 성조를 세 가지로 구별해서 말할 수 있다. 표준어 발음에서는 구별이 힘들어진 ‘개’와 ‘게’도 전라북도 서해안에서는 뚜렷이 구별해서 발음한다.
어휘와 표현에서도 다양한 사투리에서 가져올 좋은 말들이 많다. 제주도 말의 ‘삼촌’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부모와 비슷한 세대의 모든 이웃들을 부르는 말이다. 남자 어른을 아저씨로, 여자 어른을 아줌마로 나누어 부르는 걸 피하고 싶다면 참고할 수 있는 호칭이다. 예전에 서울 경기 지역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같은 성별의 손위 상대를 ‘언니’라고 불렀는데, 이 말도 정감 있으면서 차별 없이 들린다.
사투리를 잘 활용하면 부정적인 의미를 누그러뜨리면서 표현할 수 있다. 충남 서해안 지역에서는 ‘시절’ 혹은 ‘시저리’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좀 어리숙해 보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고 아주 바보, 멍청이라고 비하하는 것과는 다르게 한구석에는 관심과 애정을 담은 표현이다. “에구 이 시절아”라고 사용한다. ‘거시기하다’ 또한 느낌은 표현하되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음으로써 부정적인 느낌을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쓰일 수 있다.
이처럼 사투리에 대한 편견을 덜어내면 각 지역의 말에서 살려 쓰면 좋을 호칭, 화법, 어휘와 표현이 보인다. 이 땅의 모든 말에는 말매무새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될 요소가 가득하다,

말투, 말의 주인이 쓰는 모든 말은 소중하다

“‘지에스(일반 외과 의사)’가 또한 ‘치프’의 ‘오더’에 따라 ‘소우 업(sew up)’을 한다”고 말하는 건 유식한 말이고, “‘노가다’가 ‘오야지’의 명령에 따라 ‘공구리 치기’를 한다”고 하는 건 상스러운 말일까? 그렇지 않다. 둘 다 일하는 현장에 쓰는 전문가들의 말이다. 성별, 직업, 지위 등에 따라 말투가 달라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며, 옳고 그름과 높고 낮음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말투가 어떻게 다른지, 왜 다른 건지 살피고, 각기 다른 말투에서 본받을 만한 요소들을 찾는 게 중요하다.
과거에 어미에 ‘요’를 붙이는 것은 ‘계집애들 말투’로 취급되며 군대를 비롯해 공식적인 자리에서 남성이 쓰지 말아야 할 말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요’가 거의 모든 상황에서 쓰이고 있다. ‘다, 나, 까’로 대표되는 남성어가 무뚝뚝하고 거칠게 느껴진다면, 부드럽고 상냥하게 느껴지는 여성어가 듣는 이들에게 더 선호된다면, 남자든 여자든 여성어를 쓰는 것이 의사소통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말해야 한다는 고집은 말매무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개 살짝 들어 보실게요. 샴푸하고 드라이하실게요. 펌이 참 예쁘게 나오셨어요”라는 미용실 직원의 말투가 불편하게 들리는가. 어법으로 따지자면 틀린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손님의 마음에 들기 위한 표현이라면 틀리지 않는다. 어법에 맞게 “고개 드세요. 머리 감기고 말려 드리겠습니다. 머리가 잘 지져졌네요”라고 말한다면, 불쾌하게 느낄 손님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손님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과하게 상냥한 말투라면 그 역시 존중해야 할 선택이다. 바람직한 말매무새란 결국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 그 마음을 움직이는 말이기에, 각계각층의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만들어 낸 말투는 모두 중요한 참고가 된다.

말짜임, 말을 엮는 방식

말은 상대와의 의사소통을 위한 것. 말하기는 상대를 어떻게 부를지 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친구라면 ‘야’라고 불러도 되지만,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랬다가는 싸움이 나고, 부모님에게 그랬다가는 된통 혼이 난다. 나와 상대의 나이, 성별, 관계를 고려해 ‘형, 누나, 오빠, 언니’부터 ‘삼촌, 이모, 고모, 어머님, 아버님’ 혹은 ‘선생님, 사장님, 사모님, 여사님’ 등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높임말을 할지, 반말을 할지도 선택해야 한다. 높임말을 쓴다면, 어느 정도로 높일지도 나와의 관계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돌직구로 정면으로 말할지, 부드럽게 돌려서 말할지 서사의 방식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이처럼 매끄러운 말매무새를 위해서는 관계, 상황, 태도, 내용에 따라 말을 알맞게 짤 수 있어야 한다.

말매무새, 시와 때가 맞는 품격 있고 정다운 말

말짜임의 방식을 살펴본 뒤 저자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로 겪는 상황에서의 말매무새를 제안한다. 가족, 친구, 일터, 정치, 문서, 가상공간이 이 책이 다루는 상황이다. 물론 무수히 많은 상황이 존재하고, 모든 상황에 맞는 답은 없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제시하는 말매무새를 통해 자신만의 말매무새를 가다듬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복잡한 가족 안에서의 호칭은 단순화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시가와 처가를 구별하는 표지가 점차 사라지는 것이 그런 단순화의 한 모습이다. 예전에는 시아버지/시어머니와 장인/장모가 뚜렷이 구별되었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양가 부모에게 모두에게 ‘아버지/어머니’를 쓰거나 ‘아빠/엄마’를 쓰기도 한다. 호칭에서도 차별을 줄이려는 모습이 말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터에서는 ‘없애고 높이는’ 모습이 나타난다. 직급이나 나이 등의 변수를 없애고 모두를 서로 높이는 것이다. 서로를 ‘○○○ 씨, ○○○ 님’으로 부르고, 지위와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높임말을 쓰는 것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일에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다.
모든 말매무새의 목적은 결국 원활한 의사소통이다. 듣는 사람이 흔쾌히 받아들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기에 정치인의 유체이탈 화법이나 막말 화법, 의미 없는 말을 늘어놓는 아무말 대잔치는 바람직한 말매무새가 될 수 없다. ‘심심한 사과’를 ‘재미없는 사과’로 오해하게 한 것도, 그런 면에서 실패한 표현이다. 한자어나 오래된 표현에 약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그 글을 읽을 것을 예상했다면 다른 표현을 쓰는 게 더 적절했을 것이다.
잘못 쓰인 말은 오해를 부르고 다툼을 일으키지만 시와 때에 맞게 쓰인 말은 정답고 서로를 어울리게 한다. 이 책을 통해 말의 씨줄과 날줄을 잘 짜서 말매무새를 갖춘 말에 대한 답을 모두가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도서정보  :  한성우 지음  |  원더박스  |  288쪽  |  값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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