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서평

Home > 서평

웃음

출판저널 편집부 2024-08-21 10:13:14 조회수 219

“내면의 시적 각성에서 외면의 시적 통찰로 나아간 시”




이 책을 발행하며

강상기 시인의 시집 〈웃음〉이 출간되었다.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이다. 시집은 제1부에 단시 51편과 제2부에 장시 3편을 담았다. 강상기 시인은 80년대 초 신군부 독재 정권이 고문으로 조작한 ‘오송회 사건’이 떠오른다. ‘오송회 사건’은 오장환 시집 〈병든 서울〉 복사본을 가지고 함께 읽었다는 이유로 국어 교사 9명이 반국가 단체를 조직하여 간첩 활동을 했다는 죄목을 덮어씌워 중형에 처했던 허위 조작 사건이었다. 2007년에 이르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2008년 재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조작된 억울한 누명은 벗었으나 시인은 감옥에서 1년을 복역하고 17년 동안 해직 교사 생활을 해야만 하는 뼈아픈 시간이 있었다.
새 시집 〈웃음〉의 1부에는 서정성 깊은 단시들이다. 그 단시들에는 시인이 견뎌온 긴 고난과 고통의 시간이 농밀하게 녹아 있다. 시집의 표제시에서도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독재자나 성직자는 인간의 웃음을 뺏는다 / 웃음이 사라져 엄숙하고 심각하게 한다 // 웃음은 / 모든 구분을 사라지게 하기에 / 인간이 병들고 허약하도록 / 웃음을 뺏는다 // 그래야 동상이나 석상 앞에 / 두 손 모으고 고개 숙이거나 / 무릎을 꿇는다 // 우리는 웃음을 뺏기고 살 수는 없다 / 참지 마라 즐겁게 웃자 / 온몸의 세포가 춤추도록 신나게 웃자 (「웃음」 전문)

시인에게 있어서 가장 폭력적인 것은 ‘웃음’을 빼앗기는 것이다. 웃음을 빼앗기면 “병들고 허약”해지며 마침내 폭력적인 것 앞에 무력하게 “무릎을 꿇”게 된다고 말한다. 그럴 때 웃음을 웃는다는 것은 단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힘이자 폭력을 향한 저항이 될 것이다. 제1부의 단시 편은 이렇듯 역설과 성찰적 언어로 빚은 이러한 시들이 빛을 낸다.
이 시집에 대한 추천사에서 하종오 시인은 “사물로 은유하거나 상징하는 서정이 깊은 단시가 실려 있음은 물론이며, … 마침내 그 단시에 등장시켰던 사물과 인물을 또 다른 수사법과 비유법으로 확장하고 변용하고 표현하여 전 세계 국가가 직면한 전쟁, 권력, 신제국주의를 직시한 장시”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시집의 제2부는 세 편의 장시가 실렸다. 시인에게 삶의 마지막 순간에 도달해야 하는 이상향으로 그려진 「금강산」, 그러나 그 이상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현실을 바다의 상징적 이미저리로 조형한 「바다의 시스템」, 그리고 그 시스템을 지배하는 폭력적 힘의 특성으로서의 모호함, 불안, 불명확, 두려움으로 표출되는 「안개세요?」이다. 이 세 편의 장시는 서로 유기적인 결합 관계를 지니면서 전체로서 하나의 지향점을 추구한다. 시집의 해설에서 심종숙 시인은 “「바다의 시스템」과 「안개세요?」가 현실의 인간 사회를 부자유스럽게 하고 옥죄이는 신제국주의적 국제 질서, 권력, 전쟁 등이라면 그것으로부터 구원에 이르는 것이 「금강산」이”라고 진단하면서 “강상기 시인의 장시에는 단지 문학적 기법이나 미학에 충실한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개인사적 경험에서 체현한 시대와 역사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사회 문제에 대해 극복하려는 돌파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누가 읽던 강상기의 시집은, 일생을 다 하여 사회적 암흑의 시대를 이겨낸 후,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 오직 나일 뿐이다”(「파도」)라는 내면의 시적 각성에서 외면의 시적 통찰로 나아간 시인의 시적 증거물로서 읽기에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도서정보  :  강상기 지음  |  b  |  149쪽  |  값 12,000원


Copyright (c) 출판저널.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