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커피 한 잔,
아빠의 국밥 한 그릇
향기롭고 든든한 온기가 나를 키웠다
#1. 부모님의 청춘을 먹고 자란
딸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효도’라는 단어 하나에 어깨가 움츠러드는 건 왜일까. 부모님께 효도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거리지만 그 누구도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효도하는 방법을 딱히 모르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는 ‘효도’라는 단어 앞에서 한없이 움츠러드는 것일까. 이혜미 작가의 말은 이렇다. 어릴 때는 아빠와 엄마보다 더 좋은 사람은 없고, 세상에 전부였지만 점차 자라고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 살게 되면서 세계관이 넓어졌다는 것. 바쁜 일이 많아졌고, 부모님 외에도 소중한 사람이 많이 생겼다는 것. 그러는 사이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서랍 속 구석자리로 밀려 들어가버린 것이다. 누구나 그렇다. 항상 나를 바라봐주니 소중함을 모르고 살고 있다는 흔한 이야기는 너나 할 것 없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였다.
집안일을 끝내고 한가로운 시간이 찾아오면 그제야 허리를 펴고 싸구려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즐기는 엄마, 바쁜 시간 속 순식간에 탁자 앞에 놓이는 국밥 한 그릇으로 한 끼를 때우는 아빠. 우리는 이렇게 모두 엄마의 향기와 아빠의 온기를 먹고 자라왔다. 저마다 빛깔만 다를 뿐 우리는 모두 향기 나는 시절을 지나왔다. 그 뒤로 아린 상처 몇 개쯤은 매달려 있을 테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그런 나의 어린 시절이 나를 그럭저럭 괜찮은 성인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니 말이다. 어느새 마흔을 앞둔 딸내미가 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아빠와 엄마와의 추억을 곱씹으며 웃고 애달팠던 기억들을 꺼내놓았다. 독자들은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깔깔대다가도 나도 모르게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에 놀랄지도 모른다. 이제 아빠와 엄마, 부대끼며 산 형제자매들과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는 시간이다. 앞으로는 효도하리라는 다짐까지는 몰라도 아빠, 엄마에게 전화 한 통, 문자메시지 한 통이라도 할 마음이 들지 모른다. 그게 바로 저자의 속내다. 『효도하며 살 수 있을까』는 바로 지금 아빠, 엄마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살짝 등을 떠밀어주는 책이다.
#2. 오늘도 잘 살고 있습니다
아빠, 엄마 덕분에!
타지에서 홀로 살고 있는 딸내미 집을 급습한 아빠와 엄마. 이럴 때 딸은 반갑고 놀라운 마음에 눈물마저 나는 건 아닐까? 어느 날 예고 없이 부모님이 집에 쳐들어온 날, 저자는 어리벙벙한 정도를 지나쳤다고 표현한다. 그야말로 황당함 그 자체라는 것이다. 스무 살에 독립한 이후 17년 동안 부모님이 집을 방문한 적은 단 네 번. 이제 막 다섯 번째가 된 참이다. 부모님의 다섯 번째 방문이 반가움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라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집 앞에 도착해서야 전화를 하다니!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다음이다. 외출 중이었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지 물으니 집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을 거란다. 마흔을 앞둔 딸내미에게는 더 무서운 소리다. 하지만 결론은 해피앤딩이다. 갑작스레 만났지만 함께 따뜻한 밤을 보내고 즐겁게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추억 하나가 생긴 셈이다.
어릴 적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를 편하게 탈 수 있도록 긴 줄을 대신 서주고, 수영장에서는 안전사고가 날까 싶어 튜브를 꼭 붙잡아주고, 재래시장에서 맛난 걸 마음껏 사 주셨던 분들의 애지중지했던 마음을 잊어버린 것일까. 엄마가 나를 키웠던 시간보다 혼자 살았던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는 지금, 엄마가 없어도 괜찮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그럭저럭 씩씩한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다. 베이징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 아빠와 엄마가 보고 싶어 울던 스무 살이 아마득한 옛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란 하나의 중요한 직업이다.
그렇지만 여태까지 자식을 위해 이 직업의 적성 검사가 행해진 적은 없다.”
아일랜드의 극작가이자 평론가였던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다. 우리는 딸로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적성을 가졌는가. 가끔은 자신이 있을 테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부터 딸이라는 직업에 맞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환갑에 멋진 유튜버가 된 엄마, 작은 배를 한 척 갖고 싶다는 아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응원해주는 것, 그것이면 될 것이다. 『효도하며 살 수 있을까』는 집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정신없이 살고 있지만 가끔 내가 지냈던 울타리 안을 들여다보도록 한다. 저자는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쓰며 많이도 울었지만 무척 행복했다고 한다. 독자들도 똑같이 행복한 마음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전한다.
도서정보 : 이혜미 지음 | 크레파스북 | 290쪽 | 값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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