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생태적 위기 속에서 모색하는 여리고 따뜻한 시선”
윤재철 시인의 열 번째 시집 〈따뜻한 모순〉이 출간되었다. 4부로 나뉘어 62편의 시가 묶였다. 여기 실린 시들은 현재 지구의 생태적 상황을 극한의 위기 상태라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쏟아내는 언론 매체들에서 다루는 생태 환경 관련 기사들, 기후 위기, 온실가스, 지구 온난화, 폭염, 폭우, 혹한, 극지방 해빙, 동식물의 멸종 위기 등등에서 관념적으로 느껴질 수 있던 위기 의식은 잘 씌어진 한 편의 시를 통해서 더욱 실감이 드러난다.
“아마 그럴 것이다 / 둘이 함께 사막길을 걸어갔다면 / 한낮에 뜨거운 모래밭을 / 등에 가득 짐을 싣고 / 목마르게 걸어갔다면 // 사람이 낙타의 얼굴을 / 주먹으로 가격하는 일도 / 낙타가 사람을 쓰러뜨리고 / 물어뜯는 일도 /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낙타에게 물려 죽은 한 사내」 부분)
인류가 농경이나 목축을 하던 시절이라면, 동물을 가족이나 친구처럼 여기던 시절이라면, 인간과 낙타가 함께 살아가면서 고통과 환희를 나누며 서로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시절이라면 없었을 것 같은 사건을 다룬 시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 /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 세상에서 가장 별이 빛나는 사막 / 혹은 쓰레기장 // 영국에서 미국에서 한국에서 / 대서양 건너 태평양 건너 / 이키케 항구를 통해 들어와 / 아타카마사막에 버려진 옷 …… // 두세 번 입고 버려지는 / 수백억 벌 옷의 행방 // 옷의 무덤 / 옷의 쓰레기 산 …… // 밤이면 별을 안고 뒹구는 / 알록달록한 미라의 꿈 // 젖지 않는 옷 / 썩지 않는 옷 / 혹은 꽃 / 혹은 널브러진 날개” (「사막에 버려진 옷 혹은 날개」 부분)
칠레의 한 사막에 쓰레기로 싸인 옷더미는 인공위성에서도 보인다. 인구 3천만 명의 나라 가나에서는 매주 1천5백만 벌의 헌 옷이 들어와 버려진 옷들이 바닷가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소들이 옷더미를 파헤치며 풀 대신 옷을 뜯어 먹는 장면을 보여준 리포트도 있다. 잘 사는 나라에서 기부 혹은 수출의 명목으로 보내진 옷들이다.
오늘날의 위기 인식에서 대부분 그 원인이 인간에게 있음을 지목한다. 위기는 원인을 초래한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인류보다 위기 대처 능력이 미약한 생명체들에게는 자그마한 생태적 변화조차 멸종 수준의 위협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즈음에 작은 새 한 마리, 풀꽃 한 송이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은 시 쓰기의 본분일지도 모른다.
“찔레꽃 소담스레 피어 있어 / 꽃 무더기에 / 코부터 갖다 대는데 / …… // 찔레꽃이 내게 소곤거린다 / 향기를 너무 가져가지 마세요 / 너무 그러면 벌들이 싫어해요 / 고개 들며 뒤미쳐 생각해 보니 / 나야말로 객꾼이 아니던가” (「향기를 훔치다」 부분)
도서 정보 : 윤재철 지음 | b | 167쪽 | 값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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