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를 이끌 새로운 리더십
출판저널 2월호를 준비하는 동안 출판의 시작과 끝은 송인서적 부도사태였다. <출판저널>이 창간된 1987년에도 출판유통 선진화에 대한 필요성이 있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결국 새해 첫날부터 도매상 부도로 충격에 빠졌다. 출판사들은 4차 산업혁명을 담은 책을 출판하는데 출판유통시스템은 왜 전근대적일까.
책은 죄가 없다. 2017년을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한 출판계는 도매상 송인서적 부도로 큰 충격에 빠졌다. 지난 IMF 부도 이후 두 번째 부도를 맞은 송인서적은 59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졌음에도 출판사에 문방구어음으로 결제하는 구태적인 경영시스템을 지속해 왔다. 창고엔 부도로 묶인 책들이 어디로 향할지 모른 채 쌓여 있다.
나는 서른 살을 앞두고 피렌체에 갔었다. 잡지 에디터로 일하고 있었던 나는 새로운 서른 살을 맞이하려고 했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30’이라는 숫자 앞에서 뭔가 숭고해지는 느낌이 강하게 있었다. 이젠 정말로 내가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30이라는 숫자.
비행기표를 끊고 홀로 비행기를 탔다. 지금에야 나홀로 여행이 다반사지만,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혼자서 여행을 한다는 것, 특히 해외로 홀로 여행을 한다는 것은 꽤나 큰 용기가 필요했다. 이십 대를 잡지 에디터로 일하면서 잡지와 책이 우리 사회에 어떤 문화적인 의미가 있을까,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 나선 여행이었다. 도착지는 프랑크푸르트를 찍고 예술의 르네상스를 꽃피웠던 피렌체였다. 굳이 박물관, 미술관에 가지 않더라도 피렌체라는 도시 전부가 하나의 예술 공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도시다.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 전 세계인들이 예술가들의 작품을 느끼기 위해 피렌체로 향한다.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이 15세기, 16세기에 걸쳐 약 300년간 통치하며 문화와 경제적 풍요를 꽃피운 르네상스 시대를 상징하는 도시다. 금융업으로 재력을 쌓은 메디치 가문은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오히려 예술가를 후원하고 예술의 가치를 인정한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다. 메디치 가문이 후원한 엄청난 예술작품들을 토스카나 대공국과 피렌체에 기증하였고 오늘날 우리들은 피렌체의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됐다.
최근 우리사회에 블랙리스트 논란이 뜨겁다. 더구나 문화융성, 창조경제를 정책기조로 삼았던 정부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놓고 지원해야 할 문화 예술과 지원을 끊어야 할 문화 예술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문화와 창조라는 개념을 비정상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문화와 창조의 가장 기반이 되는 책, 출판산업이 휘청거리고 있다.
책 한 권이 독자들에게 전달되기까지 저자, 편집자, 디자이너, 인쇄업자, 영업자, 서점인, 사서 등 수많은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다. 책 한 권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책 속엔 책을 만들고 파는 사람, 책을 읽는 독자의 생각과 정신이 담겨 있다.
필자가 발행하고 있는 <월간 출판저널>은 올해로 창간 30주년이 되었고 2017년 9월호에 통권500호를 맞이한다. 1987년 창간호에 고 정진숙 발행인(을유문화사 창업자)께서 쓰신 창간사에는 우리 출판산업의 불합리한 유통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당시 출판계 선배들이 풀어야 할 과제는 아직도 풀지 못하고 우리 출판계 후배들의 숙제가 되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바라보면서, 송인서적의 부도를 바라보면서 우리 출판의 30년을 되돌아보면서 미래의 30년을 내다본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30년 전부터 과제로 남아있던 출판유통의 선진화, 출판경영의 선진화를 슬기롭게 잘 풀어갈 수 있는 해법을 우리 출판인들이 협력하여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반목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구태를 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또 하나 기대한다면, 피렌체에서 예술과 학문의 꽃을 피우게 했던 메디치가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처럼 책 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관심과 후원도 이어지길 바란다.
글_정윤희 <출판저널> 발행인
* 이 글은 출판저널 2017년 2월호(통권493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