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팔 것인가 가치를 팔 것인가?
<출판저널> 494호를 진행하는 동안 보도자료로 《서사의 요철》(소명출판)이라는 책이 들어왔다. ‘서사’와 ‘요철’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낯선 조합에 책장을 쉽게 열지 못했다. 한동안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다가 늦은 퇴근을 앞두고 책장을 열어 스르륵 페이지를 넘겼는데, 익숙한 단어들이 눈에 들어 왔다. 출판, 도서관, 저술, 번역… 출판계에 종사하고 있는 나로서는 너무 익숙한 단어여서 목차를 보고, 저자가 쓴 머리말을 단숨에 읽었다.
저자 김성연 씨는 근현대문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근현대출판물의 서사 양식과 사회적 의미를 탐구 중이다. 《서사의 요철》은 저자가 관심사로 두고 있는 연구 주제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서사를 출판하고 유통·확산시키는 제도, 그리고 서사를 창조하고 번역·수용하는 주체를 명확히 규명한 후, 그 서사의 사회적 의미, 즉 서사의 힘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고 썼다. 책 제목의 ‘요철’은 비유적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 책은 기독교의 문화적 개입과 근대 지식의 형성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1925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230권을 기증한 도서를 바탕으로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시작해 현재의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이른 이야기도 흥미롭다. 우리 근대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기독교일텐데 책에서는 조선예수교서회를 중심으로 식민지 시기 기독교 출판과 책의 유통과정을 보여준다. 식민지 조선에 상륙한 헬렌켈러 자서전, 파브르와 곤충기 등 식민지 근대인들의 욕망을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텍스트다.
《서사의 요철》을 읽으면서, 먼 훗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텍스트들이 과연 어떻게 읽혀지고 분석되어질까를 생각하니 우리가 쏟아내고 있는 글과 책들이 예사롭지 않다.
<출판저널> 494호에도 많은 분들이 등장한다. 출판인, 편집자, 문화평론가, 출판평론가, 경제학자, 노동학자, 교육자, 등… 올해 <출판저널>의 편집체제 변화를 주면서 출판 ‘밖’에서 출판을 바라보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지난 493호 스페셜에 이어 이번 출판저널 494호 스페셜에서는 '출판, 산업과 문화사이에서'를 다룬다. 책을 팔 것인가, 가치를 팔 것인가?
《지적자본론》을 쓴 마스다 무네아키는 일본 전역에 1400여 곳의 츠타야 매장을 운영하는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 주식회사의 사장으로, 책을 핵심으로 한 콘텐츠산업과 오프라인 매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출판은 지적자본의 가장 핵심에 존재하는 산업이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경영철학 두 가지를 기억하면 좋겠다. ‘고객가치의 창출’과 ‘라이프 스타일 제안’이다.
지금까지 우리 출판산업은 ‘고객’이 아닌 ‘독자’를 대상으로 책을 냈는데, 이젠 ‘독자’를 넘어 ‘고객’을 대상으로 출판업에 종사해야 한다. 책이야말로 고객가치를 창출하고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매력적인 방법이다.
“이노베이션은 언제나 아웃사이더가 일으킨다. 따라서 비즈니스 세계에 몸을 둔 사람은 아웃사이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업계 흐름의 외부에 존재하는 일반 고객의 입장에 서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 《지적자본론》 (71쪽)
아웃사이더 의식과 고객의 입장에서 우리의 출판을 바라보는 것부터 출판의 혁신이 시작된다.
글_정윤희 <출판저널> 발행인
* 이 글은 <출판저널> 494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