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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팔 것인가 가치를 팔 것인가?

출판저널 편집부 2021-03-04 15:40:50 조회수 499


책을 팔 것인가 가치를 팔 것인가?



<출판저널> 494호를 진행하는 동안 보도자료로 서사의 요철(소명출판)이라는 책이 들어왔다. ‘서사와 요철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낯선 조합에 책장을 쉽게 열지 못했다한동안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다가 늦은 퇴근을 앞두고 책장을 열어 스르륵 페이지를 넘겼는데익숙한 단어들이 눈에 들어 왔다출판도서관저술번역… 출판계에 종사하고 있는 나로서는 너무 익숙한 단어여서 목차를 보고저자가 쓴 머리말을 단숨에 읽었다.
 
저자 김성연 씨는 근현대문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근현대출판물의 서사 양식과 사회적 의미를 탐구 중이다서사의 요철은 저자가 관심사로 두고 있는 연구 주제의 결과물이다저자는 서사를 출판하고 유통·확산시키는 제도그리고 서사를 창조하고 번역·수용하는 주체를 명확히 규명한 후그 서사의 사회적 의미즉 서사의 힘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고 썼다책 제목의 요철은 비유적으로 쓰였다고 한다

본문에 ‘계몽의 요철’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인데,
이 글은 실제로 물리적 요철 모양인 ‘점자’라는 문자를 둘러싼
식민지의 정황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타자의 언어에 대한 정치·종교·문화적 주체들의 계몽주의적 개입 과정에서 드리워진 음각을 드러내 보인다는 의미도 담았다.
문자 그대로의 기표를 철(凸)로 본다면,
그것의 뒤에 가려진 기의는 요(凹)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시적이고 단독으로 존재하는 듯 보이는 텍스트를 철(凸)이라 한다면,
그것을 돋을 새김하게 누른 제도와 사랑,
주체를 요(凹)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요와 철을 모두 보아야
비로소 서사의 온전한 상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7쪽)

이 책은 기독교의 문화적 개입과 근대 지식의 형성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1925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230권을 기증한 도서를 바탕으로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시작해 현재의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이른 이야기도 흥미롭다우리 근대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기독교일텐데 책에서는 조선예수교서회를 중심으로 식민지 시기 기독교 출판과 책의 유통과정을 보여준다식민지 조선에 상륙한 헬렌켈러 자서전파브르와 곤충기 등 식민지 근대인들의 욕망을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텍스트다.
서사의 요철을 읽으면서먼 훗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텍스트들이 과연 어떻게 읽혀지고 분석되어질까를 생각하니 우리가 쏟아내고 있는 글과 책들이 예사롭지 않다.
 
<출판저널> 494호에도 많은 분들이 등장한다출판인편집자문화평론가출판평론가경제학자노동학자교육자… 올해 <출판저널>의 편집체제 변화를 주면서 출판 에서 출판을 바라보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지난 493호 스페셜에 이어 이번 출판저널 494호 스페셜에서는 '출판, 산업과 문화사이에서'를 다룬다. 책을 팔 것인가, 가치를 팔 것인가?  
지적자본론을 쓴 마스다 무네아키는 일본 전역에 1400여 곳의 츠타야 매장을 운영하는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 주식회사의 사장으로책을 핵심으로 한 콘텐츠산업과 오프라인 매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출판은 지적자본의 가장 핵심에 존재하는 산업이다마스다 무네아키의 경영철학 두 가지를 기억하면 좋겠다. ‘고객가치의 창출과 라이프 스타일 제안이다.
지금까지 우리 출판산업은 고객이 아닌 독자를 대상으로 책을 냈는데이젠 독자를 넘어 고객을 대상으로 출판업에 종사해야 한다책이야말로 고객가치를 창출하고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매력적인 방법이다.
 
이노베이션은 언제나 아웃사이더가 일으킨다따라서 비즈니스 세계에 몸을 둔 사람은 아웃사이더 의식을 가져야 한다업계 흐름의 외부에 존재하는 일반 고객의 입장에 서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 지적자본론》 (71)
 
아웃사이더 의식과 고객의 입장에서 우리의 출판을 바라보는 것부터 출판의 혁신이 시작된다.
 
_정윤희 <출판저널발행인

* 이 글은 <출판저널> 494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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