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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나는, 인생이라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출판저널 편집부 2021-03-04 15:38:07 조회수 472

비로소 나는, 인생이라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김민주 저자가 쓴 《다크 투어》라는 책을 관심 있게 읽었고 내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정윤희 곽현화의 더빨간책)에 저자를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저자는 다크 투어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인간이 저지른 어두운 현장을 찾아가서 오늘에 되살려보는 시공간 여행. 다크 투어 유형도 유배 투어, 묘지 투어, 감옥 투어, 전쟁 투어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나는 ‘표류 투어’가 와닿았다. 목적지를 정하고 출발했지만 우리 인생은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까지 표류하다가 도착한다. 그나마 잘 도착하면 다행이지만 도착하지도 못하고 계속 표류하기도 한다. 《다크 투어》를 읽으면서 나는 우리 인생의 표류를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 우리 부모님은 충주에서 4년 정도 사셨는데 고향으로 다시 내려가셨다. 군산은 외할머니께서 살고 계시는 곳이기도 하지만 아버지가 태어나고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을 보낸 고향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군산에서 태어나 유년과 청소년기를 보내셨고 푸릇한 청년땐 베트남전에 파병되셨다가 돌아오신 후 전주에서 엄마와 결혼해 나를 낳으셨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데리고 전주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술 한 잔도 못 드시고 지금까지 내가 자라면서 집안에서 큰소리 한 번 안내셨던 우리 아버지다. 15년 전에 사업에 실패하신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다행히 건강을 되찾으셨지만 그 이후 실어증에 걸리셔서 글쓰기와 말씀하시는 게 자유롭지 못하다. 잘 쓰시던 한문도 이젠 거의 잊어버리셨다.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고향을 떠나 50여 년간 거친 인생바다를 항해하신 후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신 셈이다. 청년시절 크고 많았던 꿈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서른 중반에 고향을 떠나 일흔 살이 넘어 아픈 몸으로 다시 고향에 도착한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그렇게 고향을 떠난 자가 되었다가 이방인으로 살고 다시 고향의 품으로 돌아간다.
 
<출판저널>에는 많은 책들이 매달마다 도착한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탄생한다는 점이 경외롭다. 책을 만들다 보면, 나아가 책을 만드는 경력이 점차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인생을 생각하게 된다. 좋은 책이란 저자의 연륜과 편집자의 연륜이 결합해서 나오기 때문에 저자와 편집자가 쌓아 온 시간은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거름이 된다. 시간의 발효가 쌓일수록 좋은 책이 나온다. 그래서 출판을 하다보면 콘텐츠를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출판저널> 7월호는 창간 30주년이다. 3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내가 관여한 시간은 2006년 7월 11일부터 지금까지 햇수로 12년이다. 20대부터 잡지 에디터로 일을 했지만 <출판저널>에서의 에디터 경험은 매우 특별하다. 다양한 인생의 경험을 축적한 책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 내 인생에서 큰 자산이다. 독자들에게 고백하자면, <출판저널> 30주년이 되면 더 기뻐하고 뭔가 뿌듯한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더 크다. 종이값 등 원자재를 계속 오르고 출판시장은 계속 안좋아지고 있으며 잡지시장은 출판시장보다 저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출판저널>과 거리를 두고 미래를 냉철하게 본다.

<출판저널>과 함께 해 온 12년간을 되돌아보며 나는 표류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인생이라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글_정윤희 <출판저널>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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