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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책으로 세상 읽기 2]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를 알려주신 선생님

출판저널 편집부 2025-05-15 11:11:57 조회수 158

[정윤희의 책으로 세상 읽기 2]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를 알려주신 선생님


글/ 정윤희 (문화평론가)



정윤희
문화콘텐츠와 책문화정책 전문가이다. 언론학 전공으로 언론학 석사, 문화콘텐츠 전공으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책문화네트워크 대표, ‘출판저널’ 발행인 겸 편집인, 제12기 국회입법지원단 위원(문화체육관광분과)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민주주의 실천과 가능성’, ‘생태적 글쓰기를 하는 마음’, ‘책문화생태론’ 등을 썼다.



스승의 날이 되면 꼭 뵙고 싶은 선생님이 떠오른다. 중학교 때 우리에게 책을 읽어주셨던 담임 선생님이다. 담임 선생님은 생물과목을 가르치셨는데, 생각해 보면 내가 생태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박사논문 주제로 책문화생태계를 연구하기까지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건 분명하다.  


지금도 선생님이 나직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셨던 모습과 목소리가 생생하다. 쉘 실버스타인이 쓴 그림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등을 읽어주셨는데, 지금으로 말하자면 오디오북으로 책을 읽은 것이나 다름없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한 번도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신 적이 없었고, 우리는 선생님이 읽어주신 책을 다 듣고 나면 집으로 갔다. 나는 그 시간이 무척 좋았다. 창밖엔 초록의 녹음이 무성했던 계절이었다. 그 장면은 수채화 같이 아득하다. 


그렇게 선생님이 읽어주시는 책과 함께 한 학기가 지나고, 나는 2학기 때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했다.  

“전학 가는 학교에 가면 내 친구가 있다. 새로운 학교에서 가면 적응 잘하길 바란다.” 

선생님은 나를 위로하듯 말씀하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꼬맹이가 무척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길지 않은 짧은 계절에 선생님의 낭독으로 책은 인생에서 스승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예민했던 사춘기를 지나고 있던 나에게 문학 읽기는 현실을 마주한 해방구였을 것이다.


그땐 지금처럼 학교도서관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공공도서관도 마땅치 않은 시절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책문화 정책에 관심을 가지면서 살아가는 이유는 선생님 덕이 크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가 있다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도서관에서...다양한 장소에서 어른들이 먼저 책을 읽어주는 경험을 아이들에게 선물해야 한다. 책을 읽으라는 한마디 말보다 일상에서 누군가 나에게 책을 읽어준 경험과 추억을 가진 아이들이 더 풍요로운 인생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있다고 믿는다. 


안타까운 점은 대학입시제도로 인해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마음이 아픈 세상이다. 교육이 대학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다 같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의 힘을 길러주는 교육으로 변화되길 희망해 본다. 


자연은 책의 확장이다. 길을 걷다가 아스팔트 틈새로 핀 작은 풀꽃도 우리에게 생명, 죽음,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쳐준다. 배움의 현장은 그렇게 소소한 곳에서 더 깊이 있게 다가온다. 

  

칼세이건이 쓴 책 ‘코스모스’(Cosmos)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For small creatures such as we, the vastness is bearable only through love.” 즉 “우리처럼 작은 존재에게 광막한 우주는, 사랑을 통해서만 견딜 만 하다.”


스승의 날, 인생의 길목마다 스승이 되어 주신 선생님을 기억한다. 우리에게 책을 읽어주신 담임 선생님, 류희태 선생님. 내가 전학을 간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뵙지 못했는데, 선생님의 다정한 낭독은 세상에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지구라는 빛나는 행성에서 작은 먼지처럼 존재하는 동안, 그 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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