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윤희
언젠가 30층에서 회의를 하면서 창밖으로 시선이 갔다. 비가 내린 후라서 멀리 보이는 풍광도 좋았지만 30층 아래 보이는 아주 작은 것에 눈길이 간다.
높은 곳에 오르면 내가 서 있는 곳의 아래는 아주 조그만 점처럼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이 작다. 높은 곳에 오르면 낮은 곳에 있는 것들이 잘 안 보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리지 않는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채플린의 말이 떠오른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오르거나 조직의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더 낮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람과 더 가까이, 현장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 리더십을 생각한다.
이십 대 초반부터 문화현장에서 오랫동안 종사하면서 문화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됐다. 민주주의는 정치의 영역뿐만 아니라 우리의 실제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구현되어야 하는 제도로 확장되었다. 문화의 영역에서도 민주주의 개념이 더해져 문화가 특정 소수만을 위하거나, 문화를 공급하는 입장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문화의 주체가 되고 문화를 생산하는 창작활동자로서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문화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데이비드 트렌드는 《문화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책, 예술, 영화, 미디어 등 각 분야에서 문화제도들의 발전 양상, 다양한 문화운동들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역사적 과정 속에서 분석했다. 특징은 좌우 이데올로기 대결로 문화와 정치가 결합하면서 문화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치에 방점이 찍히는 현상으로 문화정책에 대한 본질적인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문화가 시민의 삶과 괴리되면서 이데올로기만 남은 문화의 본질적인 역할에 대한 성찰을 요구했다.
현대사회에서 문화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 시대 비대면 사회가 되면서 더욱 빠르게 디지털 전환이 되는 가운데 국가적 문화산업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급변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우리 문화정책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이동형 저자가 쓴 《지역문화재단, 문화민주주의가 답이다》에서 문화민주주의의 의제인 참여, 공유, 네트워크를 통한 문화민주주의의를 위해서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참여는 거버넌스에서 뉴거버넌스로, 공유는 정보·공간 중심에서 유비쿼터스 체제로, 네트워크는 단순·개별형에서 복합형을 제시했다.
문화민주주의 측면에서 책문화 정책을 본다. 출판, 독서, 도서관 등 책문화정책은 다른 문화정책에 비해서 정책적 관심도가 낮다. 정책적 관심도가 낮다는 것은 관련정책의 예산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문체부 내에서의 정책 비중 측면에서도 그렇다. 이러한 가운데 좋은 정책을 위한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구조가 미흡하다. 가령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이사회 구조도 특정한 단체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서 제시한 대로 참여를 위한 뉴거버넌스 측면에서 본다면 공공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문화민주주의의는 문화의 다양성, 문화의 전파, 문화의 균형 성장을 통해 실현된다. 무엇보다 문화는 그동안 자본이 이끌어오는 구조 속에서 문화계는 부익부 빈익빈이 거듭되어 왔다. 문화 자본은 문화 종사자(노동자)들의 인권, 삶의 보장 등을 간과해 왔다. 다양한 문화정책들이 골고루 균형 성장할 수 있는 문화정책 실현도 필요하다. 문화민주주의를 위한 다양한 과제가 놓여 있는 가운데 문화 선진국으로서 새로운 문화정책 비전 수립이 요구된다.
*본 글은 <출판저널> 529호 발행인칼럼, 책문화생태계를 위하여에 게재된 글입니다.
<저작권자 (C)출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