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잠깐 미술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를 보고 엄마는 형편이 좋지 않은 살림살이에 돈을 모아 나를 미술학원에 데리고 가신 것이다. 나는 어린 마음에 미술을 가르쳐주는 학원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는지 엄마가 학원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계시는 동안 학원을 둘러보았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장면은, 문이 살짝 열린 틈으로 젊은 여인의 하얀 살결이 보였고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데생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람을 그린다는 것을 무엇일까. 그리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학원 선생님이 나에게 그림 그리는 솜씨가 어떤지 보자며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셨다. 나는 여러 가지 색깔 크레파스로 하얀 지면을 마구 색칠했었는데 선생님 표정을 보니 놀란 것 같았다. 정물화나 풍경화 같은 것을 그릴 줄 알았는데 어떤 형태를 갖추지 않은 이 색 저 색으로 지면을 채웠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쿡쿡 미소가 나온다. 나는 크레파스가 닳아 없어지는 걱정 없이 마음껏 색칠을 했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미술학원에 다닌 경력으로 초등학교 때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로 불렸다. 내 그림이 초등학교 복도에도 전시가 되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 전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는 바람에 미처 그림을 챙기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그 그림이 복도에 가만히 걸려있는 꿈을 꾼다. 서울로 이사를 온 이후로 학교에 한 번도 찾아간 적이 없는데 어쩌면 주인 없는 그림이 어디론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나를 사로잡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아직까지 학교에 찾아가지 않는 까닭모를 이유를 나 혼자서 맘속에 품고 있다.
요즘 서점가에 부는 컬러링북을 보면서 잠시 덮어 두었던 내 유년의 일들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왜 컬러링북에 열광할까. 언젠가 지인이 미술치료를 통해 우울증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술은 화가들만이 그리는 작업으로, 치료를 위한 과정으로, 여가시간을 활용하는 문화적인 활동이었다면 이제는 미술이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책은‘읽는다’라는 행위이지만 이제는 ‘그린다’도 읽는 과정이다. 독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1인 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독서 또한 체험을 통해 읽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이다.
이번 호 특집은 컬러링북을 주제로 하여, 서점가를 점령한 컬러링북의 트렌드와 독자들이 컬러링북을 선호하는 이유, 컬러링북을 출간한 편집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금까지 색칠놀이는 아이들이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이제는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색칠놀이를 하면서 우리 마음 저변에 깔려 있는 무엇을 마음껏 그리고 싶다는,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을여 주보고 있다. <출판저널> 3월호 표지 콘셉트도 컬러링북으로 하였다. 봄이다. 그대가 가진 색으로 그대의 봄을 마음껏 표현하시길 바라면서.
글 | <출판저널> 정윤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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