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도일 소설가의 《어룡이 놀던 자리》
소설 《어룡이 놀던 자리》는 부박한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들 이야기
<출판저널>은 최근 소설 《어룡이 놀던 자리》를 출간한 김도일 소설가를 만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소설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포항에서 살고 있는 소설가는 <출판저널>이 있는 서울 용산구 사무실로 올라왔다. 김도일 소설가는 5년 만에 서울행이라고 한다.
●김도일
2017년에 포항소재문학상 대상 수상, 《당신의 가장 중심》 등을 냈고, 포항을 소재로 한 《어룡이 놀던 자리》 작품을 발표했다.
마흔 살부터 시작한 시작(詩作)이 소설 쓰기로 이어져
정윤희 : 작가님은 어떻게 소설가로 등단을 하시게 됐나요?
김도일 : 소설을 쓴 지 10년 됐어요. 마흔 살 때부터죠. 마흔 살이 되니까 그동안 살아온 시간에 대해 대부분 흔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남들이 알고 있던 제 성격, 가치관 그리고 개인의 꿈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등 이런 것들로 방황을 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마흔 살 정도면 모든 게 명확해 지고 또 가치관이나 세계관에도 답이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근데 오십이 돼도 마찬가지로 흔들리더라고요. 흔들리던 제 자신을 좀 관찰하면서 틈틈이 시를 쓰게 되었어요. 그렇게 글쓰기를 하다가 소설 공모전을 보고 소설을 썼는데 운 좋게 입상이 됐어요.
정윤희 : 처음 쓰신 작품은 뭔가요?
김도일 : <장기농가>라는 소설이에요. 이번에 낸 소설집에도 들어 있어요. <장기농가> 소설을 제일 처음에 썼는데 쓰면서 후회를 많이 했죠. 너무 어려워서 소설 쓰는 일은 내 길이 아닌 가보다 했죠. 그래서 다시는 소설 근처에도 안 가고 독자로서 만족하면서 살자고 생각했어요. 소설 공모전 입상 후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러다보니 책을 내게 되고 같이공동 작업을 하게 되고 여러 가지 우연들이 이어져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
정윤희 : 소설 습작을 하려면 관련한 책도 읽고 교육도 듣고 하잖아요.
김도일 : 제가 국문학이나 글쓰기를 공부한 것은 아니니까 상당히 힘들었어요. 진짜 나침판 없이 사막에 툭 던져진 그런 기분이었죠. 그렇다고 사람들 모여 있는데 찾아가는 성격도 아니고요. 습작에 관련된 책들을 눈에 띄는 대로 사서 읽었어요. 그러나 그런 책들이 해결책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더 혼란을 주더라고요.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런데 결론은 그거였어요. 일단은 쓰고 공모전이든 뭐든 평가를 받아보자 라는 마음이었죠. 성과가 없으면 이 길이 아닌 것이고 어느 정도 성과가 있으면 내가 가는 방향이 맞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실천했어요. 지금도 소설 쓰는 것에 대해서는 확신을 못하고 있어요. 내가 쓴 소설이 문학적으로 이론적으로 맞는 것일까? 이런 자문을 하죠. 그런 불확실함 속에서도 그냥 쓸 뿐입니다.
정윤희 : 출판사 이름이 ‘득수’인데 어떤 의미인가요?
김도일 : 출판사 이름 ‘득수’는 출판사 대표님이 쓴 단평소설 제목이에요.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의미입니다.
정윤희 : 그렇군요. 지금 포항에서 소설을 쓰고 작가로 살고 계시는데요. 지역에서 출판하기 힘드시지 않았나요?
김도일 :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 훌륭한 작가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세상에 내놓을 만한 어떤 플랫폼이 부족해요. 책을 내줄 출판사를 찾아야 하니까요. 지역 작가들을 위해서 활동의 장을 마련해 보자는 취지로 지난 2022년에 출판사를 열었어요. 득수에서 주관하는 북콘서트, 전시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득수에서 운영하는 책방이 있어요. 책방 이름은 ‘수북’입니다. 문학전문 서점이에요.
지금의 포스코는 어룡사 자리, 삶의 터에서 밀려난 사람들
정윤희 : 포항에 가면 수북 책방에 가봐야겠네요. 작가님이 내신 《어룡이 놀던 자리》 소설 제목이 흥미로워요. 어룡이 놀던 자리는 어떤 곳인가요?
김도일 : 지금 포스코가 있는 자리가 옛날에는 아주 큰 모래밭이었어요. 풍수학적으로 용하고 물고기가 서로 승천하려고 다투는 형상이라고 해서 어룡, 모래 사沙를 붙여 어룡사라고 해요. 지역 말로는 어린불이라고 그랬거든요. 불은 방언으로 모래라는 뜻이거든요. 여기엔 모래밭뿐만 아니라 큰 솔밭이 있었고 200가구 이상 사는 마을이었어요. 그리고 프랑스에서 오신 신부가 세운 동양 최대 크기의 수녀원이 있었어요. 예전에 어룡사, 수녀원이 있는 사진을 봤는데 포스코 건설을 위해서 강제 이주를 당했다는 사연을 알게 됐습니다. 미안한 감정이 생기더라고요. 강제 이주를 당해야 했던 마을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겼고요. 그렇게 이 소설을 쓰게 됐습니다.
정윤희 : 그렇군요. 표제작 ‘어룡이 놀던 자리’ 작품을 읽어보면 포항과 관련된 소설이면서 광주민주화 이야기로 시작하더라고요.
김도일 : 소설의 화자의 시점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고요. 소설 시작을 광주로 한 이유는 20살 때 어떤 기억 때문이에요. 20대 대학생 때 저의 화두는 항상 광주로 향해 있었어요. 광주에서 학살을 당한 시민들을 보면서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학보사 기자를 하면서 시민을 취재하고 강연회를 개최하면서 이념이나 사상을 떠나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두 전직 대통령(전두환, 노태우)들이 법정에 선 모습을 보기 위해서 포항에서 새벽에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서 바로 뒤에서 방청을 했어요. 기사를 써서 학보사에 전달하고 광주 망월동으로 갔었죠.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게 됐어요. 젊은 날의 기억들이 북받치는 경험을 했고 자연스럽게 이 소설에 녹아들었어요.
정윤희 : 포스코는 우리나라 산업화, 근대화의 상징이라고 하죠. 소설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74쪽인데요.
“어룡이 놀았다는 하얀 모래밭은 회색 콘크리트 바닥이 되어 검은색 가루가 흩날리고 있습니다. 아름드리 높은 소나무 숲이 만들어주던 깊은 그늘은 굴뚝들이 검은 구름을 뿜어 푸른 하늘을 가리는 것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마을 앞에 펼쳐져 있던 논밭은 공장 건물이 차지하였고 당산 나무가 서 있던 곳에 6차선 도로가 되어 자동차들이 속도를 다툽니다. 그리고 수녀원 자리에는 용광로가 생물을 쉼 없이 토해내고 있습니다. 다만 육지로 움푹 들어온 바다만이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뿐 제 고향은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이 문장은 어떤 마음으로 쓰셨나요?
김도일 : 6차선을 사이에 두고 공장 너머에 공원이 있거든요. 포스코에서 만든 공원이에요. 공원에 카페가 있는데 2층에 올라가면 통유리라서 포스코 공장이 다 보여요.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포스코가 보이는 곳에 앉아 썼어요. 글이 막히면 유리창을 멍하게 쳐다보면서 혼자 가늠을 하는 거죠. 저기에 모래밭이 있었겠지, 굴뚝 있는 곳은 솔밭이 있었겠고, 용광로 쪽에는 수녀원이 있었겠고, 도로 쪽에 당산나무가 있었다는데... 이렇게 현재의 포스코와 옛날 마을 등 지역의 풍경이 겹쳐 보였죠. 신기한 경험이었죠.
정윤희 : 작가님의 소설은 지역에 대한 이야기지만 한국 현대사라는 거대한 틀을 가지고 있어요. 소설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김도일 : 역사의 큰 줄기에 피해자는 개인이잖아요. 그것은 광주나 포항이나 마찬가지라고 보거든요. 고통받는 개인, 특히 주류에서 밀려난 비주류들, 약자들이 당한 일들은 광주나 포항이나 같지 않을까요. 이것은 진보나 보수라는 이념이나 사상을 떠나 개인의 부박한 삶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정윤희 : 김도일 작가님이 쓰신 단편소설집 《어룡이 놀던 자리》는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이 들어 있습니다. <장기농가>라는 작품도 있는데 정약용이 포항에 유배를 온 이야기더라고요.
김도일 : 다산 정약용에 관한 책을 읽다가 최초의 유배지가 포항 장기라는 대목이 있더라고요. 겨우겨우 자료를 구해서 읽어보니까 10개월 정도 유배 생활을 하면서 지역에 나는 약재들로 병을 고치는 책도 쓰셨고 장기농가라는 시를 10수 정도 쓰셨어요. 내가 오랫동안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 올랐던 것이 화가 나기도 했고 포항시민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정윤희 : <장기농가>는 어떤 소설인가요?
김도일 : 정약용 선생이 시를 썼는데 양반의 관점이 아니라 백성의 관점에서 썼어요. 조선 시대 당시 기득권이 지금까지 끊어지지 않고 내려온 것 같아요. 노론이 정권을 잡고 조선 후기까지 이어지면서 자기들의 기득권을 보장받으면서 일본에게 나라를 넘기고 해방 후에는 친일파 처단이 제대로 되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졌고요.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했는데, 조선 시대의 기득권이 현재의 기득권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정윤희 : 작가님은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해서 스토리텔링을 하셨어요. 역사와 문학에 대한 관련성에 대해서도 작품을 쓰시면서 많이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김도일 : 역사라는 것은 어떤 사람들의 행적을 해석해서 기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해서 기록하고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와 문화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죠. 개인적으로는 소설을 쓰는 행위 작업을 항해에 비유한다면 상상력은 엔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방법은 조류와 바람에 맡기는 거죠. 저에게 역사는 조류와 바람이에요. 속도가 늦더라도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역사에 기대서 소설을 씁니다.
정윤희 : 여덟 편의 소설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김도일 : 소설의 공통점은 역사의 주류에서 밀려나는 개인, 주류 사회에서 밀려난 개인, 그런 개인들의 부박한 삶, 그렇지만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여기 사람이 있다’입니다. 소설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여덟 편이 포항을 소재로 했어요. 포항에도 사람이 산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포항에도 문학을 하는 사람도 있고,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리고 여기에도 사람이 산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윤희 :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모두 지역이고 사람이 사는 곳이죠. 작가님은 소설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김도일 : 저는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들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지역을 소재로 쓰는 소설에서 소재라는 건 재료잖아요. 작가로서 재료를 이해하기 쉽고 구하기 쉬운 재료로 집을 짓는다고 볼 수 있는데 집이라는 것은 사람이 살기 위한 공간이잖아요. 소설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각 지역에서 지역을 소재로 소설을 쓰지만 결국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이고 의문이거든요.
정윤희 : 소설문학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인간 본질에 대한 관심이라는 말씀에 큰 공감을 합니다. 앞으로 어떤 소설을 내실지 기대가 많이 됩니다.
김도일 : 앞으로 장편을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일본이 패망 후에 일본으로 추방된 사람들 이야기죠. 반대로 일본에서 일제강점기 때 태어나고 자라다가 해방을 맞이한 한국인들의 이야기. 국적은 다르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윤희 : 포항을 중심으로 한 소설이지만 지역성에서 벗어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작가님 인터뷰 감사합니다.
* 본 인터뷰는 QR코드 또는 ‘정윤희의 책문화TV’에서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